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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의 현대화' 작가 김복동, 종교와 관계없이 인간의 구원 메시지 빛을 통해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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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의 현대화' 작가 김복동, 종교와 관계없이 인간의 구원 메시지 빛을 통해 전달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62)] 빛으로 물드는 구원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로 동시대인들 작품에 활용

기존의 성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생생함 되살려 큰 감동

서양미술사는 종교 미술의 역사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이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성당의 벽화이다. 몇몇 왕과 귀족의 초상화를 제외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명화들은 성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작품들이 창작되었을 때의 경건함은 잊은 채 명화로서의 아름다움만을 감상하고 있다.

김복동 작 Salvation 2013-3, oil on canvas & wood, 237.6x115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3-3, oil on canvas & wood, 237.6x115cm
김복동의 작품은 명화의 그 경건함을 현대에 되살린다. 작품 활동 초기에 무척이나 고요한 풍경화와 노인들의 초상을 그렸던 김복동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작품에 되살리고 있다. 노인과 인간의 소외를 다루고 있는 초기의 노인 시리즈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인 한국전쟁을 겪은 노인들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으로 우리의 역사인식을 다시 되짚어보고 있다.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을 듯한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은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잊혀져 가고 있는 기존 세대들의 땀과 노력,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다. 역사와 시대에 대한 작가의 소명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한국사의 아픈 기억을 지금 바로 여기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김복동 작 노인-한국사, 65.2x50.0cm, oil on canvas, 2001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노인-한국사, 65.2x50.0cm, oil on canvas, 2001
오랫동안 풍경화와 노인의 모습을 그려왔던 김복동은 프랑스에서 단기 선교 활동을 하던 마지막 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조르쥬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의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촛불의 화가로 불리는 라 투르의 작품은 촛불이라는 작은 광원이 가장 소박하나 가장 경건한 순간을 조용한 빛으로 물들어 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소박한 인물들이 표현하는 성스러운 순간은 깊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동시대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경건한 순간의 모습들이 그 시대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을지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김복동 작 Salvation 2014-7, oil on canvas, wood & stone, 223.7x112.2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4-7, oil on canvas, wood & stone, 223.7x112.2cm
김복동의 작품은 라 투르의 감동을 이 시대에 되살리고 있다. 자신이 느꼈던 명화의 감동들을 작품 속에 도입하기로 한 뒤 구원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던 작가는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힘든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는 종교에 관계없이 구원의 문제가 메시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작품에 구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를 그린 라 투르의 그림은 책을 보다 오른 팔을 턱에 기댄 채 잠이 든 목수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다. 천사의 등과 요셉에게 보이는 어두움과 천사가 들고 있는 밝은 촛불의 빛은 대조를 이루며 극적인 효과를 이루고 있다. 김복동은 라 투르의 그림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이 시대 대한민국의 인물들을 삽입하고 있다. 라 투르 그림 속 인물들이 17세기 프랑스 서민들을 대변한다면, 이 경건한 장면과 동등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김복동의 인물들은 바로 지금 우리와 같은 이웃들이다. 역사를 드러내는 나무와 돌멩이 등의 오브제는 두 그림을 하나로 연결시켜 명화가 주는 감동이 단지 어느 한 시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것처럼, 촛불처럼 환히 빛나는 구원의 정신도 그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해서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복동 작 Salvation 2014-9, oil on canvas, wood & stone, 224x130.5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4-9, oil on canvas, wood & stone, 224x130.5cm
김복동 작 Salvation 2014-6, oil on canvas & wood, 290.9x193.7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4-6, oil on canvas & wood, 290.9x193.7cm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소식을 전한 안나의 모습에서 평생 기도하며 성경을 읽으신 어머니를 떠올린 작가는 안나의 말씀을 오늘날에도 듣고 있는 아이의 천진하고 맑은 모습을 같이 병치시켜, 라 투르의 ‘안나의 교육’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정에서의 교육이 되도록 그리고 있다. 김복동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돌이라는 오브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함께 출애굽 후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열두 돌을 세워 ‘하나님을 기념하라’는 말씀에서 착안해, 다듬지 않은 12개의 돌들로 하나님의 주권을 예배하는 순결한 교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작품의 돌은 이러한 종교적인 색채와 함께 회화에 오브제를 결합해 설치의 의미를 더함으로써, 작품에 현대성을 부여해주고,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 또한 하고 있다.

김복동 작 Salvation 2015-13, oil on canvas & wood, 344x161.9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5-13, oil on canvas & wood, 344x161.9cm
김복동 작 Salvation 2015-12, oil on canvas & wood, 260x149.5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5-12, oil on canvas & wood, 260x149.5cm
빛이 주는 감동을 연구하던 김복동은 결국 구원이라는 문제는 빛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그는 라 투르와 함께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와 동시대인들을 과감하게 성화의 모델로 쓴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의 그림들을 작품에 활용하게 된다. 완벽하게 이상화된 모습의 인물들을 모델로 삼은 기존의 성화들과는 달리 카라바조는 선술집에서 만난 사람들과 평범한 이웃들, 심지어 시체까지 작품 속 모델로 등장시켜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고, 라 투르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명암대비를 이용한 극적인 장면 구성과 역동적인 포즈, 그리고 당시의 인물들과 복장으로 성서의 내용을 그린 그의 그림은 그러나 기존의 성화에 볼 수 없었던 생생함을 되살리고 있다. 라 투르의 종교적 숭고함과 고요함을 지닌 빛이 카라바조의 작품에서는 보는 사람을 극적인 팽팽한 긴장감을 지닌 성서 이야기 속의 생생한 한 장면으로 데려가는 효과로 나타난다. 그리고 라 투르와 카라바치오의 작품을 재현하여 이를 현대적 성화로 재해석하는 김복동의 작품은 빛의 울림이 작품 속 과거에 갇히지 않고 우리 곁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김복동 작 Salvation 2014-8, oil on canvas, wood & stone, 223.8x130.2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4-8, oil on canvas, wood & stone, 223.8x130.2cm
“카라바조와 조르주 드 라투르가 빛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감동시키듯, 그림속의 시간은 결코 정지된 것이 아니며 우리는 그림속의 시간을 특정한 시대로 규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역사적 진실이 지금 여기에 있다.” 작가가 적고 있듯 노인의 모습으로 한국사의 역사적 진실을 증명하려했던 작가의 노력은 빛의 성화를 현대적 변용으로 되살려 생생한 우리의 역사로 되살리려 하고 있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이성과 빛, 구원의 관계를 설명하며, “삶은, 물질과의 투쟁 속에서 그의 일상적 초월이 늘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사건을 만날 때, 그때만이 구원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초월, 즉 빛의 초월을 떠받치고 외부 세계에 현실적 외재성을 부여하는 이 초월을 파악하려면 구체적 상황, 향유 속에서 빛이 주어지는 상황, 즉 물질적 실존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김복동의 그림 속에서 일상적 초월과 구원이 만나는 빛을 본다. 그리고 그 빛은 과거에 한때 반짝였던 아름다움이 아니라 현재적 우리의 삶에 드리워진 치열함임을 깨닫는다. 빛은 꺼지지 않는다.

김복동 작 Salvation 2014-10, oil on canvas, wood & stone, 248.3x147.5cm이미지 확대보기
김복동 작 Salvation 2014-10, oil on canvas, wood & stone, 248.3x147.5cm
● 작가 김복동은 누구?
여수 출신으로 한국수채화 공모전 특선 수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여, 1999년 서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비롯해 한일작가 5인 초대전, 한국·프랑스 작가 7인 초대전, 일본 순회 개인전,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초대전 등을 열었다. 2014년 규량아트페어 초대전 우수작가상, 2015년 금보성아트센터 우수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미협 이사,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성화의 현대화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