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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가수 정미조의 ‘개여울’의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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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가수 정미조의 ‘개여울’의 화려한 부활

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
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
베이비 부머 세대뿐 아니라 7080세대들도 아마 기억할 것이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한국 가요사에 기록될 명곡 ‘개여울’이다.

1970년대 최고의 디바로 떠올랐던 가수 정미조는 가사가 말의 씨가 됐다. 1972년 혜성처럼 등장하여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초우’의 패티 김에 버금가는 대형 가수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170㎝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 시원시원한 목소리, 명문 이화여대 서양학과 출신이란 지성미까지 겸비하여 7년 동안 인기 절정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필자가 고3 때인 1979년 갑자기 그림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던 그녀다.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하여 화가가 되었고 1993년부터 수원대 미대 서양화 교수가 되었다. 20회 개인전과 100회 단체전을 열며 화가로서 목표와 꿈도 이루었다.
그러던 그녀가 가요계를 떠난 지 37년 만에 화려하게 돌아왔다. 37년은 한 세대가 지나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아이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을 것이고, 질풍노도의 청춘은 희끗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인생의 초겨울을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올해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복귀무대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 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순간 2층까지 꽉 메운 관람객은 마비된 듯 숨을 죽였다.

계속 이어지는 히트곡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이 곡은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엔 금지곡으로 묶였다. 37년이란 세월이 무색한 목소리, 아니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견디며 더한 품격과 호소력을 갖게 된 목소리는 그 한 소절로 듣는 이를 바로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목소리엔 지난 세월이 마치 변산반도 채석강처럼 켜켜이 쌓였고, 노래엔 다가올 새날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넘친다. 우리는 흔히 이를 두고 ‘연륜(年輪)’이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매년 가을 섬진강에 연어가 돌아온다. 새끼 때 떠나 북태평양에서 5년간 어미연어로 성장해 다시 10월 섬진강을 찾아와 산란한 후 장엄한 생을 마친다. 어린 연어는 12월 부화해 섬진강에 머물다 이듬해 3월 다시 북태평양으로 떠난다. 이것이 연어회귀 사이클이다. 마치 한 마리의 연어가 된 그녀가 ‘37년’이란 앨범을 가지고 화려하게 컴백하는 순간이었다. 37년이란 세월이 그대로 앨범 제목이 되었다. ‘불꽃’ ‘그리운 생각’ ‘휘파람을 부세요’ 불후의 명곡을 뺀 나머지는 모두 신곡으로 단순한 리바이벌이 아닌 완전한 ‘리버스’였다. 그녀는 8년 전 한 인터뷰에서 가수로 컴백은 없다며 “가수는 내 인생의 달콤한 외도 같은 거. 깨고 나서도 깨뜨리고 싶지 않은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은 깨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필자는 확신했다.

타이틀곡 ‘귀로’를 끝으로 2시간 공연을 마치고 “저 멀리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온 기분입니다. 즐거운 귀향이지요. 시집간 딸이 친정에 돌아온 느낌이랄까요. 그동안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잖아요. 울고 웃으며, 여기까지 열심히 왔습니다. 이 길 끝이 어디로 이어져 있을지 다시 걸어가 보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천천히 가보겠습니다.” 삶의 새로운 문턱에 들어 선 노가수의 감회가 뭉클한 클로징 멘트였다.

인생 1막 가수로서 화려한 등장 이후 그림으로 파리의 예쁜 야경 덕분에 2막 유학시절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젊은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예순이 넘은 나이를 잊는 착각에 빠진 3막의 책갈피를 넘기고 또다시 1막으로 회귀하여 노래 꽃이 다시 피었다. 가수 최백호의 부추김이 큰 역할을 했다는 기사를 공연 다음날 조간신문에서 읽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개여울’을 인생 4막으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곧 송년회 시즌이다. 겨울의 문턱에서 송구영신 부부동반 모임을 홍대클럽에서 하면 어떨까. 그곳에 가면 정미조의 ‘개여울’이 있다.
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전 인재개발원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