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짧은 글 긴 생각]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공유
7

[짧은 글 긴 생각]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귀납적 지식의 권위에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신현정 중부대 교수
신현정 중부대 교수
뉴욕대학교 교수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영장류인 인간은 끊임없이 규칙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가 사는 세계를 질서정연한 것으로 믿고 싶어 하고, 실제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건들은 그러한 우리의 믿음을 처절히 배반한다. 실제로 여러분들 역시 매일 매시간 여러분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사건과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경우의 사건들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분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한 농부가 칠면조를 키우고 있었다. 친절한 농부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칠면조에게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받아먹을 때마다 칠면조는 ‘친구’인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먹이를 제공해 준다고 하는 믿음이 더욱 확고해지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상하는 바와 같이 추수감사절이 되면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농부는 추수감사절 메인 요리를 식탁에 올려놓기 위해 가차 없이 칠면조를 살육할 테니까.
이것은 철학에 있어서 귀납법 혹은 귀납적 지식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문제를 지적한 일례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다면 면밀하게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심할 점은 이것만이 왕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초•중•고 시절 관찰을 통한 과학적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 끊임없이 세뇌 받아 왔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칠면조는 지극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친절한 주인을 관찰했으며, 그 관찰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인간에 대한 신뢰는 견고해졌을 것이다. 자신이 그 인간의 식탁 한 가운데 오를 그 날이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다시 말해 칠면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인을 관찰했지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예측하지 못했다.

우리가 초•중•고를 통해 배운 귀납적 지식의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바로 이 예화와 같은 측면이다. 선형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학교와 교과서에 의해 견고히 구축된 지식체계는 세계를 더욱 쉽게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들은 결정적으로 실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어쩌면 그토록 열심히 머릿속에 꾹꾹 몰아넣었던 지식이 어느 순간 최선의 경우에 쓸모없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파국을 낳게 될 수도 있다.

인간에게도 앞 세대에게 배운 지식과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인간이 교육을 통해 얻은 귀납적 지식만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일은 어쩌면 예측 불가능한 바다를 눈감고 건너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리로 하여금 아프리카 초원의 영양들처럼 대학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돌진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아직도 대학을 갈망하는 이유는 어쩌면 변화무쌍한 바다를 눈 감고 건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절대 다수의 부질없는 착각에 그칠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인생이라는 격동의 바다를 건너는 데 대학이 매우 쓸모 있는 것이거나 혹은 쓸모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그래서 대학은 변해야 한다. 교수들이 터득한 귀납적 지식의 학습장이 아닌 바다를 건너는 데 필요한 지식의 통합과 활용을 목적으로 한 사회 연결망으로 말이다.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2편은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신현정 중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