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문화' 바꿀 변화 바람 새해에는 더 거세게 분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04회)] 갑질과 촛불의 힘

기사입력 : 2016-12-30 07:17 (최종수정 2017-05-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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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중시하는 문화적인 특성
모든 인간관계 위·아래로 나눠
기회 주어지면 너도나도 '갑질'

능력보다 '세습적 힘' 가진 사람
성취한 것 없으니 자존감 낮아
아랫사람 복종 통해 확인 원해

‘갑질’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사전적으로 그 의미를 풀어보면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乙)에게 하는 부당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갑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은 소위 수많은 ‘갑’들이 다양한 곳에서 ‘을’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회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죽 했으면 경찰청까지 나서 지난해 9월 1일부터 100일간 갑질 횡포를 특별단속까지 했을까? 경찰청에 따르면 9월 한 달간 특별단속으로 1289건을 적발해 1702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69명을 구속했다. 하루 평균 56.7명꼴이다.

너무 만연되어 있어서 구태여 예를 들지 않아도 되지만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자면 세칭 ‘땅콩 회항’ 논란을 일으킨 국내 굴지의 한 항공사 오너 딸의 횡포이다. 몇 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한 것은 갑질의 내용이 너무 엽기적이고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런 갑질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힌 이 항공사의 한 승무원은 “오너 가족이 비행기에 탄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라고 말하면서 “한 여승무원은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고 밝혀 큰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갑질이 횡행하게 된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즉 우리 문화와 개인의 성격으로 나누어 찾아볼 수 있다. 문화란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행동 경향”이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너도 나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갑질을 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문화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문화는 ‘아버지-아들’을 중심축으로 하는 ‘가부장적’ 특성이 강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평등한 관계가 아니므로 이 문화에서는 ‘서열’을 중하게 여긴다. “애비만한 자식이 없다”거나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들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서열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모든 인간관계를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나눈다. 위아래를 나누는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하지만 일단 서열이 정해지면 윗사람이 결정하고 명령하면 아랫사람은 그대로 복종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바람직한 윗사람의 조건 중 하나가 아랫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 나가는 것을 꼽기도 한다. 이런 문화에서 윗사람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동시에 많은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간주한다. 예전에 유행했던 대중가요의 가사 중에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동시에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어라”라는 가사도 있었다. 대중문화를 잘 반영하는 노랫말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생각들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출세해서 윗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에게 명령할 수 있고 위세를 부릴 수 있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랫사람이라면 억울해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도 은연중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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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수직적 서열문화에서 수평적 평등문화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불타 오른 촛불은 이 변화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윗사람은 명령하고 아랫사람은 복종하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문화가 효과적일 때도 많이 있다. 명령의 ‘명(命)’자는 목숨을 뜻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는 여러 사람이 수평적 관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며 갑론을박(甲論乙駁)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군대나 의사 사회에서 지금도 윗사람의 권위를 존중하고 따르는 풍토가 짙은 것도 이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이처럼 상명하복의 속성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살아온 삶이 서로의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결론내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런 문화 속에서도 모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갑질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윗사람이 정당한 명령을 내리는 상황에서는 ‘갑질’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윗사람의 특권을 아랫사람들이 더 잘 살기 위해 헌신하고 보살피는 데 이용한 사람도 많이 있다.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서 어수선한 세간의 사정을 가슴 아프다는 듯이 인자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세종대왕이 대표적인 분이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문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자기 뜻을 펼 수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한글을 창제하셨다는 세종대왕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뛴다. 한글 창제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음에도 이를 물리치고 자신의 생각을 밀고나간 세종대왕의 소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언어생활을 하고 있을까?

같은 문화 속에 살지만 유독 갑질을 심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다. 갑질의 기저에 깔려있는 심리적 기제는 ‘자기과시(自己誇示)’이다. 자기과시는 자신을 사실보다 크게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신을 사실보다 크게 나타내 보여야 할까? 만약 실제로 크다면 구태여 크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크개 보이려고 노력한다는 자체가 사실은 작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갑질을 하면서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이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한다. 권력은 다른 사람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할 수 있다. 힘은 자신의 내부에서도 올 수 있고, 또는 외부에서 주어질 수도 있다. 내부에서 오는 힘의 원천은 능력이다. 어떤 영역에서든지 맡겨진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긍정적 경험은 더욱 자존감을 강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들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이 권력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외부에서 오는 힘의 원천은 주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신분’이다.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회사의 오너의 딸이라는 지위에 의해 힘을 가졌다면 이 힘은 외부에서 오는 힘이므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 스스로가 능력에 의해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그 힘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생긴다. 이들은 자신의 명령을 아랫사람들이 복종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내세운다. 그것을 통해서만이 자신의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습적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소위 갑질을 하는 지도층은 본인이 ‘잘 나서’ 높은 지위를 얻었다기보다 ‘잘 태어나서’ 그 자리에 앉은 경우가 많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400대 부자’ 명단에 포함된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세습 부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현재의 힘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힘을 과시하고 아랫사람들이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열등감을 보상하려고 한다.

나이가 적어질수록 갑질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적어진다는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갑질을 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50대(29.8%), 40대(27.2%), 30대(18.3%), 60대(12.1%), 20대(8.8%) 순이었다. 우리 나라는 사회의 각 부분에서 수직적 서열문화에서 수평적 평등문화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이끌어낸 ‘촛불’의 경험은 이 변화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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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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