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예스맨의 무능'이 부른 국가 비극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05회)] 복종-악의 평범성

기사입력 : 2017-01-11 11:13 (최종수정 2017-05-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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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자 나치 아이히만
1980년대 고문 기술자 이근안
악행 저지르고도 잘못 몰라

국정농단 주역 청와대 근무자들
대통령 말씀에 "NO"라고 못하고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 핑계
새해에는 생각하며 살았으면

1960년 5월 어느 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평범하게 보이는 한 중년 남자가 체포되었다. 아돌프 아이히만(AdolfEichmann, 1906~1962). 그는 평범한 중년의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독일 나치의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을 체포하고 강제수용소로 이주시키는 계획을 실행한 인물이다. 그는 이송하는 기차와 수용소에 가스실을 설치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600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유대인 학살의 실질적 집행자였다. 그는 독일이 항복한 후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에 체포될 때까지 가명으로 생활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공개 재판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62년 5월 31일 교수대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그는 참관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러분, 또 만납시다. 이게 운명이라는 거요. 나는 지금까지 신을 믿으며 살아왔고, 신을 믿으면서 죽어갈 거요.”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얼굴에선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를 후회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단지 “연속 과정에서 일을 접수했고, 중계업무를 처리한 것입니다. 명령을 받고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제가 한 일은 행정 절차의 작은 업무입니다. 열차가 움직이는 다른 역할은 다른 부서에서 실행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을 오직 국가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움직인 관료라고 지칭했다. 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국가가 분열되고 서로 제각기 흩어집니다. 공직자의 용기란 조직된 위계질서입니다.” 그는 자신이 용기 있는 관료라고 자부심까지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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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유대인 학살의 실질적 집행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을 보여줘 충격을 주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그는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라는 말입니까? 저는 남을 해치는 것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맡은 일을 잘 하느냐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아이히만의 항변’을 한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며 관리였을 뿐입니다.”

이런 만행은 과연 독일 나치의 정권에서 아이히만에 의해서만 저질러진 것일까? 민주화의 대부로 불리며, 3선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한 존경받는 정치인 김근태(1947. 2.~2011. 12.)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고문 실상을 폭로했다.

그에게 가해진 고문은 이루 말로 옮길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전기 고문과 물고문 등 너무 심하게 고문을 받아 목이 붓고 쉬어서 말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머리는 깨져나갈 것 같았고,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하루 평균 4시간 동안만 잠을 자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집단 폭행을 가한 다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어라’라고 강요했다.육체적•심리적 고문으로도 모자라 인격 살인까지 시도한 것이다.

이런 고문을 한 장본인이 바로 이근안이었다. 이근안은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후 재직기간 매번 특진으로만 고속 승진했다. 재직기간 중 모두 16차례의 표창을 받았으며, 1986년 경찰의 날에는 대통령으로부터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근안은 고문기술로 ‘관절뽑기’에서부터 ‘볼펜심문’에 이르기까지 각종 고문에 통달해 있어 다른 기관에도 ‘고문출장’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근태 의원을 고문한 혐의로 수배를 받아오다 무려 12년의 도피 생활 끝에 1999년 10월 28일 검찰에 자수했다. 2000년 9월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의 대법원 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해오다 2006년 출소했다. 2008년 목사로 변신한 그는 자신이 한 건 고문이 아니라 심문, 즉 “일종의 예술”이었으며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또한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라는 책도 펴냈다. 이 책에서 “세월이 지나고 정치형태가 바뀌니 역적이 됐다. 이 멍에를 내가 고스란히 지고 가고 있다”며 억울한 듯 변명으로 일관했다.“간첩을 소탕하며 공적을 쌓고 국가에서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다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에 ‘씹다 버린 껌’이 되니 처음에는 분한 마음도 들었다. 나라를 위해서만 일했는데 시대가 바뀌었다고 이런 취급을 받나 싶어 억울하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이히만과 이근안은 어쩌면 그렇게 빼닮았는지 놀랄 정도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0.~1975.12.)는아이히만재판을 지켜본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발표해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에 의하면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아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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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왼쪼)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살인이나 비인간적인 고문을 자행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원래 범죄자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광신자나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실제로 1960년 아이히만이 체포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그가 포악한 성정을 가진 악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극히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을 검진한 정신과 의사들 역시 아이히만이 매우 ‘정상’이어서 오히려 자신들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근태 의원도 자신에게 모진 고문을 한 사람들이 분노나 흥분의 빛이 없이 미소까지 띠고 고문했다고 밝혔다. 이근안은 “그동안 장의사 일이 없어서 한가했는데 이제 일감이 풍족하게 생겨서 살맛이 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문을 하면서 그들은 “시집간 딸이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아들놈이 체력장을 잘 치렀는지 모르겠다”는 등 자기 가족에 대한 애정 어린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말하면서 아이히만이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여러 명의 아이히만과 이근안에 대한 조사로 시끄럽다. 대통령의 뜻이라며 사기업체의 경영진 교체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청와대 근무자들은 다 알겠지만 대통령이 말씀하실 때 그렇게 토를 달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교수 출신 전 수석비서관은 “모든 것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을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안타까워 한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인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악을 행할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한나 아렌트의 조언대로 2017년에는 생각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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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 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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