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3)] 동예국의 기원

공유
0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3)] 동예국의 기원

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동예(東濊)는 한반도 동북지역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문화를 기반으로 동해안 지역의 예족이 세운 사회이다.

『삼국지』에서는 동예의 위치를 한반도의 동해안 지역으로 막연히 기록하고 있으나,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남해 차차웅 16년조에는 오늘날의 강원도 강릉 혹은 함경남도 안변으로 추정되는 “북명(北溟) 지역의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인장을 얻어 바쳤다.(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獻之)”는 기사가 나와 동예의 보다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가 발견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에서는 “진솔선예백장(晉率善穢佰長)”이 새겨진 도장(銅印)이 발견된 바 있다.
이를 통해 예족의 분포지역이 의외로 넓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이들이 형질학적으로 같은 종족인지는 논란이 있다.

동예가 처음부터 위만조선에 속해 있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108년에 한사군이 설치된 이후 현토군과 낙랑군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1958년 평양 정백동 목곽묘에서 발견된 “부조예군(夫租薉君)”이라는 도장(銀印)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동예는 313년에 낙랑군이 고구려에게 멸망된 뒤부터 고구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춘천 신매리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청동 창, 국립춘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