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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21)] 신라 왕실의 숨은 주역, 왕비족

기사입력 : 2017-02-03 06:46 (최종수정 2017-02-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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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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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시집온 조문국 공주, 의성 조문국박물관


조문국은 신라 왕비족이었다. 조문국 공주 ‘운모’와 ‘아비’치의 사랑이 움트는 가운데 날로 강성해져가는 사로국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조문국을 침공한다.

조문국의 왕은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운모’ 공주는 신라와 화친을 맺고 신라의 왕비가 된다. 이후 신라의 왕비는 조문국에서 배출되어 신라왕들의 어머니 나라가 된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으나 신라 왕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존재가 있다. 바로 왕비족이다. 신라에서는 왕의 혈통뿐 아니라 왕비의 혈통도 세습되었다.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 등의 사료에 따르면, 초기 신라의 왕비 자리는 제1대 왕비 알영의 후손이나 가까운 혈족으로 채워졌다.

아울러 신라 왕실은 외래 세력을 포섭해 왕실을 보전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왕비의 혈통에 변화를 줌으로써 대외 환경의 변화에 대응했다.

2세기경 신라가 북방으로 영토를 팽창하는 데 조력한 조문국의 공주를 왕실로 받아들여 진골정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고, 5세기경 고구려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던 때에는 고구려 여성 보미를 받아들임으로써 대원신통이라는 왕비족을 세웠던 것이다.

왕비족은 신라의 국운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신라에서 여성의 정치적인 지위가 높았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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