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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47)] 쇠처럼 굳은 성 '고성'

기사입력 : 2017-03-1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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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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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다호리유적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집모양토기, 고성박물관



'소가야(小伽耶)'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만 있는 이름이다. '삼국지' '일본서기' '삼국사기'에는 '고자'·'고차'·'고사'처럼 서로 통하는 이름이 나온다.

'삼국유사'조차 '고자국(古自國)'이라 기재되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고자군을 지금과 같은 고성(固城)군으로 바꿨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고성을 한 때 철성(鐵城)이라 이르기도 했다.

고성이나 철성이나, '쇠처럼 굳은 성'이라는 뜻이다. 소가야는 '작은 가야'가 아니라 '철의 가야'였다. 고성읍 동외동 패총 유적아랫단에서 야철지를 발견했고 1995년 국립진주박물관이 패총 유적 중앙부 제사 유적에서 새 두 마리가 마주보는 청동 장식을 발굴했다.

"전자가 1~3세기 쇠가야의 제철이나 야철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다스리던 4세기쯤의 지도자의 존재를 보여준다."

고성 토기는 당대 고성에 있던 가야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고성 토기가 멀리는 초기 백제 왕성으로 여겨지는 서울 풍납토성에서 발견됐고, 경남의 함안·의령·합천·진주·산청·함양뿐 아니라 전북 남원과 장수까지 진출해 있다.

이를 모두 고성에 있던 가야의 영역이랄 수는 없겠지만 영향을 그만큼 광범하게 미치고 있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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