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칼럼] 은퇴 후 아내에게 팽(烹) 당하지 않으려면

기사입력 : 2017-03-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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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
경쟁사회에서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가는 남자들은 가족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유보하며 산다. 나중에 은퇴하면 가족에게 잘 하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아슬아슬하게 가족과의 불편한 동거를 유지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 필자보다 6살 손위인 사촌형님의 이야기다.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지만 머리가 좋아 당연히 가방끈도 좋았고 엘리트 코스를 거쳐 국내 굴지의 그룹 건설회사 부사장으로 얼마 전 퇴직했다.

은퇴하던 날,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만감이 교차하더란다. 특히 수십 년 뒷바라지를 해 준 형수님이 그럴 수 없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중동건설 현장을 누비고, 임원이 되어서는 잦은 야근과 술자리로 가족과 함께 저녁시간을 지낸 날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준 것은 다 형수님 덕분이란다. 뒤늦게 철이 들었는지 그날 이후 형님은 이제 남은 여생은 형수님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두 부부가 유럽과 남미로 크루즈여행도 다녀왔고, 주중과 주말 가릴 것 없이 골프와 등산, 지방 문화투어 등을 부지런히 다녔다. 쇼핑을 좋아하는 형수님을 위해 백화점에서 핸드백과 쇼핑백을 잔뜩 들고 화장실 앞에 기다려도 쪽팔리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아웃도어 의류 한 벌 구입하는 데도 이것 저것 입어보고 시간이 무척 많이 걸렸다. 다혈질적이고 불같은 형님 성격에 이전 같으면 버럭 화를 내고 혼자 뛰쳐 나갔을 것이다. 지금은 기세도 많이 꺾였고 형수님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충분히 참을 만 했다고 한다. 몇 개월 동안 세상을 다 얻었던 기분이었고 마치 제2의 신혼생활이 펼쳐지는 듯 하였다고 한다.

은퇴 후 이런 행복을 만끽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수도 없이 썩소도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꿈같은 퇴직 허니문기간이 6개월 지속 될 무렵 여고동창회 모임에 다녀와 심각한 얼굴로 정색을 하며 이렇게 폭탄선언을 하더란다. “당신 이제 내일부터 제발 혼자 밖에 나가서 놀아 주었으면 좋겠어. 내 생활이 엉망이 되어 버렸어”. 그동안 형수님은 고생한 형님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꾹 참고 함께 놀아 주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젖은 낙엽족과 공포의 거실남으로 변해 가는 괴물이 부담스러웠던 것이었다. 형님은 긴 한숨소리와 소주잔을 들이키며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형님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예외일까? 먼저 가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퇴직 후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발상에 문제가 있었다. 퇴직 후 갑자기 다가 온 낯선 남자(?)는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아내에게는 구속이자 굴레였던 것이다. 수십 년 간 회사인간으로 살아 온 남편과 아줌마형 인맥으로 중무장한 아내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이다.

흔히 우리는 현직에서 잘 나갈 때에는 지금은 바빠서 가족과 함께 못하지만 나중엔 잘하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바빠서 말도 별로 안 섞고 살지만 나중엔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살아야지 생각한다. 엄청난 착각이다. 말이라는 요물은 매일 하는 사람과 할 때 이야기가 많은 법이다. 고향 친구를 몇 년 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공통화제가 없어 한 시간도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없다. 부부의 행복도 평소 끊임없는 연습을 통하여 다듬고 쌓아가야 하는 돌탑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어느 날 갑자가 찾아오는 신기루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연속선상에서 켜켜이 이어진 누적의 결과물인 것이다.

다음으로 직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직장에서 퇴직 이후를 염두에 둔 커리어 디자인을 했어야 했다. 고령사회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노후 행복한 삶을 위해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 퇴직 후 경제활동이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 노후의 삶과 부부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퇴직을 앞두고 갑자기 자기 주도적인 커리어 디자인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많은 직장인들은 회사주도의 커리어 패스에 익숙해 왔기 때문이다.

조직심리학의 대부인 메사추세츠 공대 샤인 교수는 세 가지 측면에서 노후 커리어를 설계하라고 충고한다. 첫 번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을 분석하라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냉정하게 자기분석을 통하여 알아야 한다. 자신을 중심축에 놓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 위기와 기회, 갈고 닦은 전문기술과 지식을 파악해야 세컨드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내가 무엇을 할 때 삶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 화려했던 시절은 버리고 현재와 미래에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좋다고 끌리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눈높이를 낮추고 사회적 체면과 남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세 번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내 가슴이 설레이고, 내 영혼의 북소리가 울리는 내 내면에 깊이 잠들어 있는 동기 욕구를 일깨우라는 이야기다. 이 세 가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커리어 디자인의 출발점이자 자신에게 적합한 라이프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전 인재개발원 책임교수) 한대규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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