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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연구노력 알지만 상용화·시장성 있는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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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연구노력 알지만 상용화·시장성 있는지 의문"

[글로벌 CEO에게 대학의 미래를 묻다(2회)] 라이카 지오시스템즈 코리아 최영구 대표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기업 국내영업 통해 목표 달성

자신과 상대를 관찰하는 힘 갖추고 논리적 사고 필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이 더 효과적


‘글로벌 CEO에게 대학의 미래를 묻다’ 두 번째 인터뷰로 라이카 지오시스템즈 코리아의 최영구 대표를 초대한다. 라이카 지오시스템즈 코리아(주)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200년 전통의 기술력을 가진 스위스 라이카 지오시스템즈의 한국 지사다. 최고의 정밀함과 정확도를 가진 측량 및 측정 장비를 국내에 공급하고 있는 회사다. <편집자 주>

-일반적으로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면 국경을 넘어서 2개국 이상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영활동’의 개념으로 이해가 되는데요. 최영구 대표님께서는 국내기업과 글로벌 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요즘에는 국내기업 중에서도 글로벌 기업을 능가하는 회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과거만큼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 볼 때, 글로벌기업은 실용적이고 투명성 있는 경영을 지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기업에 비해 정체성이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예로 글로벌 기업의 선전문구는 대부분 매우 심플해서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라이카 지오시스템즈의 경우를 예로 들면, 모든 로고에 ‘When it has to be right, Leica Geosystems.’라는 문구가 들어가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밀 측량과 측정 기술을 가진 회사에 이 문구만큼 함축적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문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확해야 한다면 라이카 지오시스템즈!’라는 의미인데, 정말 임팩트가 확실하군요. 제가 25년 전에 해외여행을 갔을 때, 일본 소니의 광고 문구를 본 기억이 납니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도 거의 희미해져가는 새벽녘이었는데요. 호텔 창문에 비친 건너편 건물 옥상의 붉은색 네온사인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해요. ‘It’s a Sony’란 문장이었는데요. 기업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나타내는 그 표현이 얼마나 강렬하든지…. 간단명료한 기업의 캐치프레이즈는 기업의 정체성과 선명성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수단인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글로벌기업은 캐치프레이즈만큼 경영목표도 명확하고 단순한가요?

“네, 그런 편입니다. 추상적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게 아니라 기업 구성원 모두가 단순하게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명확한 목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카 지오시스템즈가 속해 있는 핵사곤 그룹의 경영상 목표를 요약하면 ‘Number one or strong number two in the market.’과 ‘EBIT〉○○%’ 두 가지입니다. 매출 측면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나 1위를 바짝 추격하는 2위를 획득하면서 세전이익을 ○○% 이상 달성하라는 의미이지요. 매출과 이익 측면의 명확한 목표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목표를 기준으로 R&D 투자, M&A, 제품 방향성 설정, 인적자원관리 등의 모든 경영 프로세스가 결정됩니다.”

라이카 지오시스템즈 코리아 최영구 대표. 그는 젊은이들에게 자신과 상대를 관찰하는 힘을 갖추고 논리적 사고를 길러라고 당부했다.이미지 확대보기
라이카 지오시스템즈 코리아 최영구 대표. 그는 젊은이들에게 "자신과 상대를 관찰하는 힘을 갖추고 논리적 사고를 길러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직원 모두가 회사의 목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면 경영진과의 소통도 원활하고 향후 사업의 방향성 설정 부분에서도 비교적 합의가 빠를 것 같네요.

“네 그런 편입니다. 이런 목표의 명확성 때문에 글로벌 기업은 직급보다는 주로 직책으로 움직이죠. 대리, 과장, 부장 등의 직급은 국내 영업을 위해 편의상 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부분 자신의 정확한 업무 영역을 표시하는 영문 직책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연봉 역시 직책에 따라 결정되므로 직책이 변하지 않으면 연봉 조정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자신만의 고유 업무 영역인 직책이 확실하고 그 직책에 의해 업무체계가 이루어지는 만큼 상급자와의 관계 역시 수평적이겠네요.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글로벌 기업의 상하관계가 더 엄격한 경우도 많습니다. 얼른 보면 할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서로 간섭하기 어렵고, 상호간의 호칭 역시 말단사원에서부터 회장까지 이름을 부르며 친숙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 상사는 부하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표가 명확한 대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만큼의 불이익도 각오해야 하는 셈이지요.”

-말씀을 듣고 보니 글로벌기업의 생태계가 국내기업보다 더 치열하다는 느낌이 드네요(웃음). 그런 글로벌기업의 대표를 맡고 계시니 매일 매일의 일상이 전쟁 같으시겠어요.

“전쟁 같은 일상이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가치관이라는 프레임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신만의 프레임을 갖고 있고, 또 가져야만 하지만 인생의 변곡점,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이 프레임을 한번 걷어찰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프레임을 정립할 수 있을 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고 새로운 삶을 열 수 있으니까요.”

신현정 중부대 교수
신현정 중부대 교수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주위에서 많이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걷어차는 용기가 필요하단 말씀은 상당히 인상적이네요. 아마도 대표님 말씀은 오늘날과 같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성찰을 통해 변화가 필요할 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 청년들 중에는 이러한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기업을 목표로 하는 대학생들이 상당히 많은데요. 이러한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글로벌기업은 국내영업을 통해 목표를 달성합니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영업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을 관찰하는 힘, 둘째 상대를 관찰하는 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논리적 사고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자기를 잘 관찰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은 실제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여기에 상대를 관찰하는 힘이 더해진다면 상당한 시너지효과가 발생하지요. 인간 종족 중에 가장 유약했던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인간 종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경제활동은 거의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하고 있고, 나를 알고 상대를 아는 상태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세일즈 마케팅의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숱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고, 예상되는 반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논리적 사고체계가 중요합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잘 갖추어진다면 아마도 어느 기업에서나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국내 영업이 주가 되기 때문에 영어를 퍼펙트하게 할 필요까진 없지만 본사를 비롯한 해외조직과의 원활한 업무진행 및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외국어 능력이 갖추어진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최영구 대표님은 서울대 재학시절 학생운동을 하시다가 투옥되신 경험도 있으시고, 또 수차례의 실패 경험을 딛고 일어서 지금의 글로벌기업 CEO가 되시기까지 정말 수많은 인생역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들이 대표님의 사유체계를 풍성하게 하는 정신적 자산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지막으로 기업의 CEO 입장에서 오늘날 대학이 나아가야 될 방향성이나 지향해야 할 교육에 대해 생각하신 바가 있다면 조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육자는 아니지만, 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저로서는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을 바라보았을 때 사실 약간의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도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노력하는 수많은 교수님과 연구원들이 많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러한 연구가 얼마나 상용화 가능성이 있고 시장성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속해 있는 정밀 측량 측정기기 분야의 경우, 많은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정부 연구자금을 출연하여 외국에서는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장비를 국산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대부분 프로토타입만 개발해 놓고 그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힘들여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국내 시장이 워낙 작다 보니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하려면 개발 비용의 몇 배가 들어가게 되는 데다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기존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 수입대체재를 개발하는 수준을 계속해서 반복하기보다는 기존에 상용화되어 있는 기술은 그대로 가져다 쓰는 대신 그 위에 어떤 부가가치를 얹을까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후발주자가 기술개발에 영업망까지 신규 발굴하여 선발주자를 따라잡으려면 투자대비 회수효과를 생각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아직 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의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것은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하드웨어 개발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잘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쪽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업규모가 영세해서 그렇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기업의 하청과 용역의 대상으로 전락해 가는 경우를 보면 매우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하드웨어보다는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이 잘하는 콘텐츠 개발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육성에 대학이 두 팔을 걷어붙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담 정리=신현정 중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