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 중 손병희는 누구? 설민석은 왜 폄훼했나…

기사입력 : 2017-03-17 10:46 (최종수정 2017-03-1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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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역사 왜곡의 중심에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손병희가 자리 한다. 사진=인물정보

[글로벌이코노믹 조규봉 기자]
설민석의 역사 왜곡의 중심에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손병희가 자리 한다.

손병희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인물백과사전에 따르면 손병희는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천도교 제3세 교주를 지냈다.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으며 교육 ·문화사업에 힘썼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충북 청원(淸原) 출생으로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東學)에 입교, 3년 후 교주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가 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을 이끌고 전봉준(全琫準)과 논산에서 합세, 호남 ·호서를 석권하고 북상하여 관군을 격파했으나,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원산(元山) ·강계(江界) 등지로 피신한다. 1897년부터 최시형의 뒤를 이어 3년 동안 지하에서 교세 확장에 힘쓰다가 1901년 일본을 경유,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이상헌(李祥憲)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오세창(吳世昌) ·박영효(朴泳孝) 등을 만나 국내사정을 듣고 1903년에 귀국, 두 차례에 걸쳐 청년들을 선발하여 일본으로 데리고 건너가 유학시켰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하고 경찰에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이듬해 10월 병보석으로 출감 치료중 별장 상춘원(常春園)에서 사망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한편 역사계에서는 33인에 대해 다소 엇갈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 설민석이 손병희가 주모와 놀아났다고 얘기한 것도 그런 시각 때문이다.
조규봉 기자 ckb@g-enews.com 조규봉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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