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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칼럼] 당신의 회의, '퍼실리테이션'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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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칼럼] 당신의 회의, '퍼실리테이션' 하십니까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
우리 회의실에 손석희 아나운서가 있다면, 누군가 발언권을 공정하게 부여하고 단계마다 명확하게 일단락 지어주며, 효과적인 방식으로 논의를 이끌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 회의를 효과적으로 운영하여 좋은 결정을 내리고 결정이 지체없이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회의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고, 그것이 바로 조직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조직생활을 하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는 '회의'다. 한 취업포털 '커리어'의 조사에 의하면(2012년, 직장인 543명 대상 조사)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3.2회 회의에 참석하는데, 효율성은 5점 만점에 2.8점에 그쳤다. 회의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결론은 없고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에'(47%), '항상 결론은 상사가 결정하기 때문'(26.5%), '불필요한 회의'(14.6%), '의견을 내는 사람만 내기 때문'(7.3%)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수 없이 회의를 하지만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회의 스킬, 그렇게 조직의 회의는 회의 리더의 '개인기'에 의존하며 많은 경우 비효율적으로 진행돼 왔다. 어쩌면 우리는 바람직한 회의가 어떤 모습인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고 개선할 방법도 못 찾는 것일지 모른다.

지난 10여 년간 효과적인 회의 스킬이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전파되어왔는데, 구체적으로 '참석자 모두 의견을 개진하고 의사결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회의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진행하는 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필자는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 퍼실리테이터다. 빠르게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생소한 직업이다. 간단하게 '회의 기획 및 진행자'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지만 안건의 내용과 이에 관련된 이해관계자를 사전에 분석하고 최적의 토의 프로세스를 설계하여 원활하게 진행한다는 면에서 단순한 행사 기획자나 사회자와는 다르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회의는 어느 S공단의 임원 워크숍이다. 새로 부임한 이사장은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고, 임원 및 부서장들은 임기 3년인 이사장의 요구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이사장 주재의 회의는 그럭저럭 진행이 되었지만 돌아서면 일은 진척되지 않았다. 변화를 이끌어 갈 임원진과 부서장들이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력과 실천과제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1박2일로 기획된 워크숍의 하이라이트는 혁신에 대한 찬반 토론이었다. 적절한 워밍업을 거쳐 마음이 많이 열린 참석자들은 정말 솔직하게 혁신에 대한 불편한 마음과 반대의견을 꺼내 놓았고, 한 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 혁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피력했다. 솔직한 토론이 가능하게 한 퍼실리테이션 스킬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혁신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물론 반대했던 사람들도 '그래, 여전히 썩 달갑지는 않지만, 혁신이 필요하고 내가 임원으로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반대하거나 저항할 일은 아니'라고 큰 숨 한 번 쉬고는 흔쾌히 입장을 바꿨다.
우리는 대체로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선한 의지가 있으며 그 의지를 믿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논의의 장을 열어주면, 누군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했을 때 발언자의 원래 의도를 전체에게 잘 전달해 주면, 가장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면 그것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가 함께 좋은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독려해주면 대체로 사람들은 대승적 관점에서 옳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퍼실리테이션의 기술이고 철학이다.

이미 퍼실리테이션을 도입한 글로벌 기업이나 국내 주요 기업들도 아직은 소수의 사람만이 퍼실리테이션을 학습하고 있지만, 누구나 때때로 회의 리더가 되는 현실을 생각할 때 퍼실리테이션 역량은 모든 회의리더가 갖추어야 할 필수역량이다. 탁월한 조직문화를 자랑하는 GE는 1980년대 중반부터 퍼실리테이션을 도입하여 사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퍼실리테이터 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끈 잭 웰치 회장은 '퍼실리테이션 회의가 아니면 하지 말라'고 한 바 있다.

누구나 바라는 소통,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소통. 우리는 소통 방법을 학습하는 데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당신의 조직에도 '손석희'가, 곳곳에 필요하다. 회의 중 불필요한 갈등과 시간 허비를 줄일 수 있는 역량을, 기계 부품이 된 것 같은 의욕상실이 아닌 의사결정 참여자로서의 보람과 활력을 구성원들에게 허하라!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국제공인퍼실리테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