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생각] 친구란 무엇인가

기사입력 : 2017-04-19 08:51 (최종수정 2017-04-1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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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중부대 교수
오랫동안 대학생들만 가르치다가 이번에 ‘경기꿈의대학’ 참여를 통해 한 학기 동안 고등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강의 주제가 ‘친구력(親舊力)인지라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에게 친구란 무엇인가.” 30여 명의 학생들에게서 나온 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그중 압도적으로 많은 대답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같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외롭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함께해 주는 사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즉 청소년들에게 친구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혹은 비밀까지도 편하게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혹여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돕는 관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항상 함께 있음이 대전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가진 이러한 친구에 대한 개념은 그들이 얼마나 ‘접속’에 목말라 하고 있는가를 대변한다. 이러한 경향은 신종 질병으로 불리는 카·페·인 중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카·페·인 중독은 어느 한 순간도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누군가와 상시 접속되어 있음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감에 휩싸이는 현상이다. 그 불안감의 요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증 욕구일 것이다. 일상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지적처럼 의식주와 성을 제외하고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욕구는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인정의 범주에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존경 같은 인간의 가치 평가와 관련한 다양한 감정들이 포함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인증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기보다 자신의 외부, 특히 친구에게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오프라인의 친구들이 그 우선 대상이지만 그것만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는 SNS의 친구들로 그 대상을 확대시킨다. 친구들에게 인증을 얻는 수단이 되는 것이 바로 접속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는 언제든 자신이 인증을 원할 때, 그 인증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자신을 아는(혹은 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와 상시 접속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증 욕구는 접속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러한 접속에 대한 집착이 과도해질 경우 이지메나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사회병리현상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친구란 과연 무엇인가? 우선 사전적 의미를 한번 살펴보자. 서양의 친구(Friend)는 고대 영어인 Freond에서 유래된 말로 Lover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에 반해 우리의 친구(親舊)는 한자의 친할 친(親)자와 옛 구(舊)자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로 친애하는 만남이 오랜 동안 지속된 관계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서양의 친구 개념은 교제 기간에 구애받기보다는 친밀감의 정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동양의 친구 개념은 친밀감을 느끼는 사귐의 기간이 중요하다. 따라서 SNS를 통해 교제하는 불특정 다수의 친구는 서양의 시각에서는 친구로 부를 수 있지만 동양적 시각에서 보면 친구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세 가지 유형의 친구관계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중 가장 바람직한 우정은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관계라고 기술했다. 이러한 친구관계는 좋은 사람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탁월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될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이들은 친구가 잘됨을 자신의 잘됨과 동일시한다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친구 개념은 어쩌면 다음과 같은 영어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A friend is one who overlooks your broken fence and admires the flowers in your garden.”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이러한 친구관계를 지향하기보다는 SNS 활동을 통해 나타나듯이 친구의 양적 확대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 유감이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괴롭거나 슬플 때 위로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같이 울어주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도 가능하다. 일례로 드라마를 볼 때, 드라마 속 배우들과 나는 친구관계는커녕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슬프면 나도 슬프고 그들이 울면 나도 울 때가 많다. 따라서 혈육관계가 아님에도 진정으로 상대의 잘됨을 바라는 관계는 오랜 사귐을 통해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고귀한 감정이다. 그러한 감정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이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축복 같은 것이다.

청소년들이 새로운 학년을 맞아 아직도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고 너무 초조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나자마자 절친한 것처럼 행세하려는 사람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일 수는 있어도 친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새 학기에 빨리 친구를 사귀려고 조바심을 내면 낼수록 오히려 나와 맞지 않는 친구를 사귀게 될 확률이 높다. 만남보다 더 힘든 건 항상 결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오히려 값싼 타인의 인증을 위해 급우들의 안색을 살피느라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자신 스스로를 인증하려고 노력했으면 싶다.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인증할 수 있게 되면 친구는 반드시 생긴다. 예나 지금이나 오래 되어야 제 맛인 것의 대표가 술과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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