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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적 재능에 도전 망설이지 않는 한국무용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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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적 재능에 도전 망설이지 않는 한국무용 전도사

[무용인 인물탐구(3)] 박수정 서울시무용단 주역무용수

낙랑공주
낙랑공주
한국무용가 박수정.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봄바람이 깔깔대며 굴러오는 소리였다. 밝고 환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그녀의 이미지는 봄꽃 금낭화를 닮아 있다. ‘신시’에서 주역을 맡은 수정의 열연을 본 사람들은 그녀의 연기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찬 겨울바람이 앗아간 아버지, 몇 년을 울어대며 불효를 탓했건만 무심한 봄은 그녀를 쾌활함으로 이끈다.

한예종 졸업 동시 오디션에서
안무가 국수호 선생 눈에 띄어
생명력 긴 춤꾼 목표로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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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앵전
살풀이춤이미지 확대보기
살풀이춤
‘남한산성에 피는 꽃, 이화’, ‘신시’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박수정(PARK SUJOUNG, 朴수정)은 아버지 박종호, 어머니 김보연의 무남독녀로 1985년 1월 4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국악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무용학 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무용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무한 가변의 춤 재능을 소지한 한국무용 연기자이다.

수정은 그리움을 타는 춤꾼이다. 주변에는 늘 낭만이 머물다 가지만 차원이 다른 그녀의 그리움의 질료(質料)는 전통 춤, 창작 춤, 현대무용에 이른다. 그녀는 모래 종이 같은 거친 세상에서 등나무 너비 같은 마음으로 느리게 싹을 틔운 죽순처럼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열정의 빠알간 석류를 춤의 제단에 바치고 이슬이 비치는 새벽까지 춤에 몰입한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왈츠’를 자신의 교향악으로 삼고 단원들을 춤의 바다로 몰아 밤을 잊은 연습실에서 봄을 탈취하여 머물게 만든다. 그녀의 얼굴은 두껍게 덧칠한 유화보다는 수채화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수채화의 그늘에서 쉬면서 춤의 잔향(殘香)을 오래 남기는 춤꾼 박수정은 사랑과 슬픔의 동시 이미지로 모든 사람들을 그리움의 섬에 전설처럼 머물게 한다.

누구나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놀기를 좋아했던 시절을 추억 속에 묻어버리고, 수정은 이른 날개 짓으로 묵은 시간을 솎아내면서 안개 낀 아침을 맞이한다. 노력 없이 이룰 수 없다는 겸허한 사유로 수정은 천년의 빛을 뿌린다. 쓰린 새벽 울부짖으며 맞았던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가슴에 새기며 붉은 태양의 기운을 얻은 그녀는 배반의 포말과 바닷바람에 맞서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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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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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
뮤지컬 등 인접 장르까지 출연

다음달 3~7일 정기공연 앞두고

'춤과 허수아비' 준비에 몰두

둔탁한 파열음이 이어질 때, 수정은 날개처럼 바람을 타고 간 아버지, 국악고 시절의 윤성주, 유경희 선생, 깊이 있는 전통춤을 사사해준 오철주 선생, 양성옥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 대학 졸업과 동시 무용단 오디션에서 그녀를 뽑아 준 국수호 선생 등 자신이 주역 무용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고마운 분들을 떠올린다. 연(緣)의 기원을 찾아 춤 연습에 더욱 매진한다.

슬럼프가 이끼처럼 끼면 수정은 여행을 떠나거나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서 기분 전환을 시도한다. 예작(藝作)을 위한 설렘으로 가슴 벅찼던 서울시무용단의 오디션 ‘백조의 호수’ 단장 고(故) 임이조 선생, 공연에 대한 호평은 수정에게 재공연과 함께 서울시 무용단 입단이라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수정은 현재 단국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김현숙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수정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대학을 갓 졸업한 춤꾼의 데뷔작에 첫 주역을 맡은 2009년 성남국제무용제 폐막작인 병자호란 배경의 ‘남한산성에 피는 꽃, 이화’에서 환향녀 이화 역, ‘신시’에서 웅녀 역을 맡은 일일 것이다. 여명의 눈동자로 솟아오르는 수정의 친구인 춤, 그 그리움의 질료를 몽땅 뿌려 새겨놓은 얼굴 하나, 가끔 이화, 가끔 웅녀가 되고 싶은 것이다.

국수호춤의 귀환-기악천무이미지 확대보기
국수호춤의 귀환-기악천무
백조의 호수-거문조의 유혹이미지 확대보기
백조의 호수-거문조의 유혹
박수정, 능동적이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여인이다. 그녀의 호기심은 연극, 영화, 뮤지컬, 넌버벌 퍼포먼스, 댄스컬 등 인접 장르의 공연에 출연, 장르별로 달라지는 무대 메커니즘을 즐기고 배워나가는 과정에 이른다. 저돌적인 추진력은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이른 성취감을 맛보게도 한다. 그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부끄럽지 않은 춤꾼으로 긴 생명력을 갖고자 한다.
수정은 공연 이외에 독서를 즐기는 편인데 소설을 좋아한다. 그녀에게는 상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화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의 성격이나 인생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 흥미롭게 여겨진다. 글로 묘사된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을 상상하며 책 읽는 즐거움은 시청각을 통해 보고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의 한 축(軸)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수정의 안무작은 M극장 신진안무가 넥스트 ‘해는, 달이 꾸는 꿈’(2009), 춤음악극 ‘미롱’(2011) 총괄, 울산시립무용단 ‘나는 무용수다 Ⅱ-춘향, 몽’(2012), 부지화-9 모던국악컬 ‘꽃피고 사랑피고’(2013) 총괄, 부지화-10 모던국악컬 ‘아리랑 꽃 피우다’ 총괄(2013), M극장 젊은 안무가전 ‘길들여지다’(2013), PADAF ‘나비가루’(2013, 대상), 울산시립무용단 ‘KD 슈퍼스타Ⅱ-연애의 온도’(2013, 안무경연 우승), 성암아트홀 ‘공간창조-연애의 온도II’(2013), SCF 국제안무페스티벌 ‘TEMPERATURE, LOVE’(2015, 그랑프리),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더 토핑’ ‘지나가는 여인에게’(2016) 등에 이른다.

박수정 한국무용가
박수정 한국무용가
수정은 제1회 온 나라 전통춤 경연대회 전통춤부문 동상(2006), 제2회 온 나라 전통춤 경연대회 전체대상(2007, 대통령상), 제32회 서울무용제 대상 ‘여우 못’으로 우수연기상(2011), 한국무용학회 & 한국연극학회 주최 PADAF ‘나비가루’ 경연 대상(2013), ‘나비가루’ 한국무용학회 차세대 안무가상(2014), 울산시립무용단 기획공연 KD 슈퍼스타 ‘연애의 온도’ 안무경연 우승(2013), SCF국제안무페스티벌 ‘TEMPERATURE, LOVE’ 솔로&듀엣 전체 그랑프리(2015), ‘TEMPERATURE, LOVE’ 댄스비전 BEST DANCER상(2016, 한국현대무용진흥회)에 이르는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나가는 여인에게’(2016)는 무대 사이즈나 작품 규모에 따른 다양한 형식의 시도와 공연의 일회성을 지양하기 위해 군무와 솔로 두 가지 버전으로 안무를 시도하였고,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더 토핑 공연에서는 군무작으로, 두리춤터 ‘청춘대로 덩더쿵!’ 공연에서는 솔로 작으로 공연하였다. 이 작품은 2017년 스페인 빌바오 액트페스티벌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

불망의 강
불망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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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
박수정은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축하공연 ‘꿈과 화합’ 외 3편, 2004년 ‘제1회 국제 무용 콩쿠르 개막 축하 공연’ 외 4편, 2005년 ‘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과 함께 한 70년’ 외 2편, 2006년 ‘DANO, 2006 KOREAN BREEZE’ 영국 순회공연(옥스퍼드, 캠브리지, 런던)외 6편, 2007년 제1회 최승희 춤 축제 출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초청공연 ‘天舞’-자금성 內중산음악당외 15편, 2009년 국수호 춤극 ‘낙랑공주’(낙랑役)외 12편, 2010년 서울시 무용단 ‘백조의 호수’(주역 설고니, 흑조役)외 13편, 2011년 박수정 전통춤 ‘유향-우리 춤 향기 되어 흐르다’ 외 25편, 2012년 서울시 무용단 정기공연 ‘황진이’(주역) 외 22편, 2013년 제 45회 진포 예술제 ‘한국의 춤 백년화’ 中 ‘쉿! 탈들이온다’(주역, 군산예술의 전당)외 32편, 2014년 단국대학교,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대 자매결연 25주년 기념 공연(헝가리 부다페스트 예술궁전, MUPA, 주역) 외 18편, 2015년 박수정 전통춤Ⅱ ‘유향-우리춤 향기가 되어 흐르다’(국립민속박물관) 외 12편, 2016년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여름빛 붉은 단오’(주역) 외 10편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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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박수정은 다가오는 5월 3일부터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서울시무용단 정기공연 ‘춤추는 허수아비’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은 출연과 함께 조안무로 참여하였다. 자신을 다 비우고 농부를 위해 헌신하는 허수아비, ‘비우니 아름답다’는 채워보지도 못한 예술가들에게는 형벌 같은 운명이다. 그게 인생이다. 박수정, 스승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이 그 울타리가 되어야할 때를 준비해야 한다. 건투를 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