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흥덕왕릉(興德王陵) 무인석이 아랍인 이유는?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69)]

기사입력 : 2017-04-2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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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기다'를 연재합니다.

한류문화인진흥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김경상 작가는 1990년부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 100여곳을 방문해 지난 25년 간 세계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왔으며, 최근에는 한민족의 시원을 밝히기 위해 한·중·일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을 답사했습니다. 앞서 연재한 '고조선 시대 단군 이야기'에 이어 '한반도 삼한시대 이야기'를 김경상 작가에 의해 생생한 유적과 유물 사진으로 만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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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형 무인석, 흥덕왕릉.

흥덕왕릉(興德王陵)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신라 제42대 흥덕왕의 무덤이다. 흥덕왕의 본명은 김수종(金秀宗·景徽)이며, 제41대 헌덕왕의 아우다. 장보고로 하여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방어하게 하였고,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茶) 종자를 지리산에 심어 재배하도록 하였다.

흥덕왕릉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0.8m, 높이 6m이다. 비교적 커다란 둥근 봉토분으로 무덤 밑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단 역할을 하는 돌을 1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면석을 세웠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각 탱석에는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다. 탱석과 면석 위에는 다시 갑석을 올려 마무리 하였다.

무덤의 주위 4모서리에는 각각 돌사자를 한마리씩 배치하였고, 앞쪽의 왼쪽과 오른쪽에 문인석·무인석을 각 1쌍씩 배치하였다.

신라사람들은 왕릉을 지키는 장수의 얼굴을 왜 서역인으로 조각했을까? 신라인들은 덩치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랍인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장대한 몸체와 이색적인 용모에서 풍기는 것을 '능 지킴이'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무인석상은 신장이 약 250㎝이나 되는 큰 체구이며 부릅뜬 큰 눈과 콧등이 우뚝한 매부리코 그리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큰 얼굴이며 머리에는 아랍식 둥근 터번을 쓰고 있어 퍽 인상적이다. 이와 흡사한 무인석상은 괘릉에도 있다.

경주를 방문한 이라크국립박물관 관계자들은 괘릉의 무인상을 보고 '자신들의 조상을 닮은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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