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사람’에서 김태성(조달환 분)은 형사 강성진(손현주 분) 앞에서 공포심에 울먹이다 서러움에 감정이 북받쳐 소리 내어 흐느끼며 그 자장면을 먹는다. “아내와 함께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후루룩 한 젓가락 입 안 가득 넣어 먹다 보니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함께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퇴임 후 3일이 지난 새벽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렸다던 몇 년 전 글귀가 그 장면에서 뇌리에 겹쳤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날마다 매 끼니로 먹어도 ‘보통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가 굳이 부지런을 떨며 새벽에 남긴 문장 속의 자장면과 탕수육, 그리고 영화 속 범죄자가 울면서 먹은 한 그릇의 자장면은 사람과 맛이라는 두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불러내 중국집으로부터 막 도착한 나의 자장면 위에 얹어 놓았다. 사람과 맛은 면과 얽히고설키며 달콤 쌉싸름하게 입안을 돌아다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이다. 직접 해보지 않아도, 직접 가보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과 능히 닿을 수 있게 해주는 인간의 고귀한 힘이다. ‘함께 맞는 비’로 신영복 선생은 공감에 대해 비유한 바 있다. 공감의 진정성은 사람의 말과 글에서 읽어 낼 수 있다. “생각이 죽어서 말이 되고 말이 죽어서 글이 된다”고 함석헌 선생은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자장면을 먹는 김태성에게 강성진이 읊조리는 ‘미안하다’는 말에는 그의 모든 감정이 압축되어 있다. 그 말은 상대의 처지에 자신을 세울 때, 상대의 시선으로 자신의 행동을 대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자장면 한 젓가락에 사람 사는 맛을 느꼈다던 전임 대통령의 글은 사람 사는 방식과 멀었던 그의 삶을 대변한다. 먹방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그의 식성이 국밥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말과 글을 타고 이어지는 동안 국민들에게는 실종됐던 ‘사람 사는 맛’은 웃음과 함께 그의 입안에서 되살아났다. 국민들이 원하는 살맛을 그의 입맛은 알지 못했다. 그의 후임자도 마찬가지였다.
먼지로 뿌연 세상에서도 숲은 푸른 생기를 돋우었다. 숲이 한 것이 아니라 풀과 나무가 피워 낸 기운이다. 나라의 활력도 저절로 솟아나지 않는다. 국민 개개인의 활기가 돋아나 어우러질 때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 화려한 봄날,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꿈꾸는 투표용지는 꽃씨처럼 던져져야 한다. 욕망을 자극하고 감정을 부추기는 이미지 정치의 허상을 이제는 산산이 깨뜨려야 한다. 사람답게 살아와서 사람 사는 이치를 알아서 굳이 사람 사는 맛을 떠들지 않아도 국민들이 원하는 살맛나는 나라로 꽃을 피워 낼 사람을 향해 씨앗은 너울너울 날아가야 한다. 꽃은 단숨에 피어나지 않는다. 나라도 우리의 삶도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씨앗에 조금씩 물을 주고 빛을 쪼일 시간을 함께 기다려야 한다.
오랜만에 먹은 자장면은 다행히 뱃속에서 잠잠히 머물렀다. 텅 비어 있던 위는 더 채워 달라고 보채고 있었다. 곱빼기를 시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람의 마음이 늘 이렇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