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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봉이 김선달의 고려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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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봉이 김선달의 고려인삼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개성지역은 인삼의 고향이라 불릴 정도로 고려인삼의 중심 산지이었다. 이 지역에서 산출되는 고려인삼은 1500여 년 전부터 재배해 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어 ‘개성인삼’, ‘고려인삼’의 본산지로 오래 전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쳐 왔으나 오늘날도 과연 그러한지는 잘 모른다. 인삼은 음지식물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은 피하고 산란광으로 옥외광선의 10분의 1 정도가 알맞다. 이 때문에 통상 인삼밭을 가림막으로 가려 키우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온난화의 기후 변동으로 인하여 사과산지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농산물의 산지가 북쪽 지방으로 올라가고 있어 옛날의 그 명성을 개성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지는 매우 궁금하다.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인삼의 전 세계 한 해 생산량은 약 8만t이나 되며 금액으로는 거의 21억달러에 해당한다. 주로 한국, 중국, 캐나다, 미국에서 생산되어 35개국으로 수출되는데 그중 대부분이 한국산으로 우리나라가 최대 생산국이고, 중국이 최대 소비국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옌볜, 지린성 등에서 인삼을 생산하고 있어 최대 생산국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이제까지는 인삼을 통해 많은 외화를 벌어오곤 하였지만 우리나라보다도 더 많이 인삼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추측되는 나라가 있다. 놀랍게도 스위스다. 스위스는 인삼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코리안 진생”이라는 이름의 건강기능식품을 파는데 그 가격은 우리가 인삼을 판매하는 것보다 약 100배나 더 많이 주고 판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들은 우리나라로부터 인삼 중에서 하찮은 품질의 것을 싸게 사가서 인삼 속의 유효성분을 분리한다. 인삼의 주요 활성성분은 사포닌 또는 진세노사이드라는 당의 복합체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분석기기의 발달로 37종의 진세노사이드(인삼 사포닌)의 화학구조가 고려인삼에서 발견되었는데 반해 미국삼에서는 14종, 삼칠삼에서는 15종의 진세노사이드가 발견되었다. 특히 진세노사이드 Ra, Rf, Rg3, Rh2 등은 미국삼에는 없고 고려인삼에만 유일하게 들어 있는 성분들이다.

이 성분의 분포정도를 토대로 원산지를 판별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 또는 기후 조건에 따라 이러한 성분의 함량이 들쑥날쑥하다는 문제가 있어 품질이 좋은 제품을 매년 균일하게 생산 공급하기에는 여느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있어왔다.

이런 우리 고려 인삼의 한계점을 파악한 스위스의 회사는 우리나라 인삼 중에서 싼 것을 사다가 유효한 기능성분의 진세노사이드를 정밀하게 분리한 후 이를 다시 일정 비율로 재구성하여 일정한 품질을 갖는 “코리안 진생”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를 하고 있다. 이미 고려인삼에 대한 유명세가 세계적로 알려져 있는 바 그것을 이용하여 비싼 가격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들이 확보한 뛰어난 분석기술로 우리 제품을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니 봉이 김선달이 나타나 고려인삼을 파는 꼴이 되어 버린 셈이다. 우리가 인삼에 대하여 좋은 연구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스위스 인삼회사를 위하여 노력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기후 온난화의 여파로 인삼을 우리가 언제까지 생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더위에 강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진세노사이드의 함량이 월등한 품종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분석기술도 하루 빨리 따라가 스위스 회사보다도 훨씬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구태여 싼 가격에 스위스에 인삼을 파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고급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시급히 키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려인삼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식물 원료나 식품 중에도 세계적인 제품으로 나설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제품들을 선별하여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노력들이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