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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짠 네 조각의 퀼트…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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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짠 네 조각의 퀼트…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공연리뷰] 한국무용제전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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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캔버스 위의 나이프 페인팅 작업같은 거친 상흔을 상기시켰지만, 그 상처 때문에 진주가 탄생한 연유라고 치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추억을 좇아 기억속의 책장을 넘기다보면 사랑을 위해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나약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연민이 쏟아진다. 초롱초롱하던 나만의 별은 무리별 들의 세계로 변해있다.

제31회 한국무용제전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김호은(카시아무용단 예술감독, 계원예고 교사) 안무의 『기억의 조각』은 한 여인의‘후회’, ‘머무름’, ‘운명’, ‘나약함’에 걸친 퀼트로 짠 기차여행을 다룬다. 예술가의 삶은 보통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기도 전에 사랑은 봄바람처럼 당도하고 첫 이별의 상처가 이슬처럼 내린다. 안무가는 냉철한 사유로 예술가들의 운명적 삶을 서정성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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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그날, 그 기차’, ‘그날, 그 바다’로부터 시작한 네 가지 조각의 이야기는 불행과 행복이 공존함을 그린다. 행복은 불행을 딛고 존재할 때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 된다. 안무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네 가지 조각들이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원한다. 현실이란 석양의 바닷길(4명의 스퀘어가 하나의 바다길이 된다)은 불행과 행복이 공존하는 인생길을 의미한다.

잃어버린 그 날! 기억의 조각을 찾아 새벽기차에 오른다. 놓치지 말았어야할 그 때의 ‘후회’, 지속하고 싶었던 ’머무름’, 거부할 수 없었던 ‘운명’, ‘운명’에 순종한 ‘나약함’은 기억의 조각이 되고, 흔적이 되었다. 기차에서 내린 그 날! 한 날, 한 시의 현실은 기억의 조각이 되고, 바다는 둘 만의 바다가 된다. 붉은 바닷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도 석양의 바다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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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하루’에 걸린 ‘그날, 그 기차’, ‘그날, 그 바다’는 새벽부터 밤까지 네 개의 조각(4명)이 담당한다. 이 작품은 프롤로그; ‘새벽’, 1장; ‘남자’, 2장; ‘아침’, 3장; ‘정오’, 4장; ‘저녁’, 5장; ‘밤 ’, 에필로그; ‘현재의 나’로 구성되며,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의 도입부에서 유명감독이 된 살바토레가 잘려나간 흑백필름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프롤로그; ‘새벽’, 영상은 도시의 밤과 새벽 풍경을 스쳐간다. 무대 중앙 뒤, 여인이 테이블에 앉아서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는 술 취한 모습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여인과 남자 사이에 갈등이 인다. 안개가 자욱한 길이 보이고, 여인의 걸음을 때마다 가로등이 켜진다. 여인은 슬픔과 절망을 담고 기차에 오른다. 기차안의 풍경으로 의자 군무가 펼쳐진다. 기차는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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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1장; 조각1. ‘남자’, 그녀를 역전에서 놓친 후회가 인다. 슬픔과 안타까움의 독무, 영상은 빨리 지나가는 기차 창문을 보여준다. 2장; ‘아침’, 조각1 조각으로 아웃되고, 일렬이미지의 남녀 2쌍 등장, 기차에서 내린 날, 파도와 모래가 보이는 푸른 바다의 추상적 영상. 조각2.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한 순간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의 파도 앞 여인, 파도군무가 펼쳐진다.

3장; ‘정오’, 조각2 되고, 조각3. 남자가 등장한다. 운명이 결정되는 남자들의 세계, 인간의 관계가 그려지고, 여인은 순간순간 등장한다. 사내는 그녀를 계속 찾지만 쉽게 만나지 못한다. 숲속 남자 3인무는 관계가 꼬이고 풀리고를 반복한다. 영상은 나무와 숲의 풍경을 원근으로 보여준다. 격렬하지만 어둡지 않고 약간 장난스러운 남자군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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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4장; ‘저녁’, 조각3 조각 세트로 아웃되고, 세 명의 조각들 조각세트 앞에 등장한다. 중앙에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과 조각 4인무가 시작된다. 조각들은 퇴장한다. ‘나’의 독무, 영상은 흔적이 되어버린 기억의 조각과 조우하며 기차(후회), 파도(머무름), 숲(운명), 모래(나약함)의 공간적 기억의 조각이 하나의 영상이 되며 절정을 이룬다. 조각4가 등장하고, ‘여인’과 상, 하수가 대칭된다. 조각4의 나약함을 바라보며 ‘여인’은 퇴장한다. 조각4. 여인(나약함)의 결혼, 아기, 압박의 여인의 남녀군무가 펼쳐진다.

5장; ‘밤’, 현실속의 남자(프롤로그의 남자)가 등장하여 삶의 무게에 처한 현실을 독무로 보여준다. 조각들과 함께 남녀 현실의 격정의 군무가 이어진다. 바다길로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군무의 춤꾼들 앉아있다. 에필로그; ‘현재의 나’, ‘여인’이 등장하며 독무를 춘다. 군무 속 조각들 스퀘어 속에 남아 피트로 들어오는 붉은 조명을 따라 춤춘다. 여인도 테이블 쪽 무대 중앙의 현실의 길로 걸어 들어간다. 군무들 세트 옆에 서서 여인을 바라보며 춤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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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영상, 세트, 음악, 의상은 두드러지게 춤에 기여하였다. 장면마다 세트에 하나 씩 추상적인 느낌의 영상을 그림처럼 담아내면서 춤이 돋보이게 하는 영상(정호영), 현재와 기억 속의 기차, 바다, 숲, 모래의 영상을 살리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차길의 원근감을 담은 세트(이종영), 베토벤의 ‘비창’등 클래식을 주조로 한 작곡 음악과 첼로, 피아노, 타악 등이 사용된 음악(시온성), 4가지 조각의 색으로 미니멀하고 심플하게 한국적 모던함을 살려내는 의상(노현주)은 춤을 격상시켰다.

김호은 안무의 『기억의 조각』은 수맥이 관통하는 듯한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 매력적인 춤이다. 안무가, 계원예고 졸업생 8명, 객원 무용수 8명으로 구성된 기량의 연기자 17명은 무용제전이 해마다 내거는 금년의 주제 <통・행・연, 通・行・戀>에 밀착하며 한국적 모더니티 추구에 부합되는 춤을 구사, 동 시대 무용계에 신선함을 주면서, 한국창작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한국 창작 춤 직조에서 드문 실력을 보여준 그녀의 추후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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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 출연
: 김호은 이예윤 유혜지 이주애 홍은표 김다연 김소연 탁희정 이현지 장동아 이혜준 김태경 박주상 최호종 한성민 선전능 노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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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은 각본‧안무의 '기억의 조각'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