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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창립 50년] 최초 민간 정유사에서 수출 기업으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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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창립 50년] 최초 민간 정유사에서 수출 기업으로 ‘우뚝’

[글로벌이코노믹 오소영 기자] 오는 19일 창립 50주년을 맞는 GS칼텍스는 국내 최초 민간 정유사로 출발했다. GS칼텍스는 과거 럭키금성그룹과 미국 셰브런의 자회사인 칼텍스가 1967년 5월 합작 설립한 호남정유가 전신이다. GS칼텍스는 청정 제품 개발과 수출 확대에 힘입어 업계 2위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석유 불모지에 탄생한 민간 정유사
10일 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의 역사는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제2정유공장을 추진한다. 5월 사업자 공모 입찰이 시작되고 동양석유(한화 계열)와 럭키(현 LG화학) 등도 입찰 경쟁에 뛰어든다. 연간 2~3억원의 수익이 예상되는 입찰전이었기에 경쟁은 뜨거웠다.

럭키는 호남정유를 사업 주체로 내세우며 5만5000배럴 규모의 정유공장 완공을 목표로 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마침내 1966년 11월 17일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사의 사업주체로 선정됐다.

당시 박삼준 민중당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 18명은 국영 기업 선정을 주장했으나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민간 정유사가 필요했다.

호남정유는 1996년 LG칼텍스 정유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5년 지금의 GS칼텍스가 됐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역발상

GS칼텍스가 1967년 민간 정유사로 출발한 후 한화와 쌍용(현 에쓰오일) 등이 국내 석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존에 유공(현 SK에너지)과 극동정유(현 현대오일뱅크)를 비롯해 5사 경쟁 체제가 1980년대 비로소 완성됐다.
GS칼텍스는 역발상으로 경쟁을 돌파했다. 1980년대는 2차 오일쇼크가 닥쳐 국내 석유 수요가 급격히 줄었고 업계의 공장 가동률은 떨어졌다. GS칼텍스는 지난 1981년 15만배럴 규모의 제3원유정제시설을 증설했기에 타격이 컸다.

특히 GS칼텍스는 난관을 극복하고자 업계 최초로 임가공 수출을 시도했다. 일본에서 원유를 들여와 정제를 대행해 수출했다. 그 결과 1983년 2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청정휘발유’란 개념이 드물던 1994년 GS칼텍스는 브랜드 ‘테크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테크론은 미국 쉐브론이 특허를 보유한 특수 첨가제 OGA502가 사용돼 자동차 엔진 내부와 연료흡입계통 등에 쌓인 퇴적물을 제거하는 친환경 휘발유 제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같은 혁신에 힘입어 GS칼텍스는 하루 약 6만배럴의 정유시설이 올해 79만배럴로 성장했다. 가동 첫해인 1969년 114억원에 불과하던 연매출은 지난해 기준 23조4800억원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신성장 동력 확보에 총력

GS칼텍스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기준 2조600억원으로 업계 2위를 수성하고 있다. 자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친환경·고부가 제품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GS칼텍스는 1995년 제1중질유분해시설(RFCC)을 지은 후 2007년 제2중질유분해시설(HCR), 2010년 제3중질유분해시설(VRHCR), 2013년 제4중질유분해시설(VGOFCC) 등을 통해 국내 최대 규모인 27만4000배럴의 고도화 처리 능력을 갖춰왔다.

이와 함께 바이오 사업 등 차세대 먹거리 개발에도 적극 투자한다. GS칼텍스는 올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전남 여수에 차세대 연료인 바이오부탄올 공장을 짓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바이오케미컬과 바이오에탄올 등 석유산업과 연관된 분야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고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GS칼텍스는 창립기념일 50주년을 맞아 자사의 역사를 담은 사사를 편찬할 예정이다.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