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의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선일보 전직 사우 모임인 조우회의 부탁으로 정치권에 들어와서 느낀 솔직한 심정을 써보았다"며 기고문의 전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강 의원은"언론인으로 배운 균형감각이나 양비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한 쪽을 택해 목소리를 높여야 언론도 주목한다. 그러면 정치적인 반대세력도 생겨나기 시작하고, 지지세력도 규합돼 자발적인 후원금이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해보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거가 끝나도 이낙연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을 맡는 등 몸은 바쁘기만 합니다. 저도 이제 정치인으로서 몸집이 다소 커졌는지,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기고문 전문이다.
(전문)
얼마 전 대학동기의 부친상에 조문을 갔었습니다. 여성 변호사인 그 동기는 저를 보자 “참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산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도 사법시험 대신 조선일보 기자로 평생을 보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기에게 “지난 1년은 드라마라기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고 답했습니다.
2년 8개월간의 편집국장을 그만둔 것이 2015년 10월 초였습니다. 그때부터 제 인생은 자석에 끌리듯 정치권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항’도 해보았습니다. 대구 지역구 물갈이라는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황급히 몸을 빼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새누리당의 언론계 몫 비례대표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광화문에서 여의도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옷은 정말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이상했지만 “정치판은 원래 이런가 보다”하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참고 배우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기다렸습니다.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라는 미국 영화가 제게도 실현되기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권, 아니 나라 전체에 태풍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4.13 총선 패배는 그 전조에 불과했습니다. 불길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다가 결국 최순실게이트라는 ‘핵폭탄’이 터지더군요. 편집국장시절 저는 최순실을 ‘정윤회의 부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왜 그리 깜깜이였는지 탄식해봐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탄핵정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 기자 시절의 경험을 살려 광화문 촛불시위현장에도 가보면서 탄핵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저는 국회의원 3백명 중의 한 명, 그것도 초선 비례대표일 뿐이었습니다. 국회 본회의 발언 등 고함도 질러보았지만, 거센 쓰나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니, 제 스스로 어떤 한계를 지레 설정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권은 일단 양비론이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언론인으로 배운 균형감각이나 양비론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쪽을 택해 목소리를 높여야 언론도 주목합니다. 그러면 정치적인 반대세력도 생겨나기 시작하고, 지지세력도 규합돼 자발적인 후원금이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탄핵정국이 악몽 같았다면 19대 대통령 선거 캠페인은 개인적으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큰 차이의 2등에 그쳤지만, 그 과정은 깜깜한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 희망을 되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사실 새누리당에서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탄핵정국의 여파로 후보조차 내기 어려웠습니다. 반기문과 황교안이 포기하자 겨우 찾아낸 후보가, 개성이 강한 홍준표 경남지사였습니다. 본인 말대로 ‘초상집 상주’ 역할을 한 것입니다. 처음엔 선거비용의 국고 보전 기준인 득표율 15%를 비관해 TV광고비도 민주당, 국민의당보다 3분의 1만 책정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4%를 얻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모두 우리 보수층들의 애정과 격려 덕분이었지만,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 캠페인에서 당의 미디어본부장을 맡아 미디어와 ‘전쟁’을 치렀습니다. 초기엔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로만 몰고 가는 바람에 군소후보 취급을 받았지만, 끈질긴 싸움 끝에 마지막엔 3강 구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모든 네트워크, 경험, 아이디어를 총동원했습니다. 당내에서 차츰 이름도 날리고, 몇 차례 TV출연 덕분인지 유세현장에서 초콜릿을 건네는 지지자들도 만났습니다. 조선일보의 명성을 더럽히진 않았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사실 초선의원이 선거대책위원회의 본부장을 맡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과분한 책임을 맡아 그저 당에 누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나도 이낙연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을 맡는 등 몸은 바쁘기만 합니다. 저도 이제 정치인으로서 몸집이 다소 커졌는지,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월 16일 의원총회에서 제가 한 발언을 소개해드리며 끝을 맺을까 합니다.
“이번 대선은 등 돌린 보수 민심이 ‘문 닫으라는 것은 좀 심하니까, 제대로 한번 야당 해봐라’라며 한번 용서해준 겁니다. 그동안 친박-비박 당권 싸움만 했지 한 게 뭐 있습니까. 정말 우리 당이 보수와 새로운 가치를 가지고 좌파에 대항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 초선들은 그동안 참아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만은 않겠습니다. 이제는 참지 않고 싸울 겁니다
김하성 기자 sungh905@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