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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언론인으로 배운 균형감각이나 양비론은 설 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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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언론인으로 배운 균형감각이나 양비론은 설 자리가 없었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을 하고 있다./YTN화면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을 하고 있다./YTN화면 캡처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19대 대선과관련 "우여곡절 끝에 24%를 얻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며"모두 우리 보수층들의 애정과 격려 덕분이었지만, 참으로 민망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선일보 전직 사우 모임인 조우회의 부탁으로 정치권에 들어와서 느낀 솔직한 심정을 써보았다"며 기고문의 전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광화문 촛불시위현장에도 가보면서 탄핵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저는 국회의원 3백명 중의 한 명, 그것도 초선 비례대표일 뿐이었다. 국회 본회의 발언 등 고함도 질러보았지만, 거센 쓰나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고 초선의 소회를 밝혔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강 의원은"언론인으로 배운 균형감각이나 양비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한 쪽을 택해 목소리를 높여야 언론도 주목한다. 그러면 정치적인 반대세력도 생겨나기 시작하고, 지지세력도 규합돼 자발적인 후원금이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해보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거가 끝나도 이낙연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을 맡는 등 몸은 바쁘기만 합니다. 저도 이제 정치인으로서 몸집이 다소 커졌는지,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효상 의원 페이스북
강효상 의원 페이스북


■다음은 강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기고문 전문이다.

(전문)

얼마 전 대학동기의 부친상에 조문을 갔었습니다. 여성 변호사인 그 동기는 저를 보자 “참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산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도 사법시험 대신 조선일보 기자로 평생을 보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것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기에게 “지난 1년은 드라마라기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고 답했습니다.

2년 8개월간의 편집국장을 그만둔 것이 2015년 10월 초였습니다. 그때부터 제 인생은 자석에 끌리듯 정치권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항’도 해보았습니다. 대구 지역구 물갈이라는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황급히 몸을 빼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새누리당의 언론계 몫 비례대표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광화문에서 여의도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옷은 정말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이상했지만 “정치판은 원래 이런가 보다”하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참고 배우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기다렸습니다.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라는 미국 영화가 제게도 실현되기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권, 아니 나라 전체에 태풍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4.13 총선 패배는 그 전조에 불과했습니다. 불길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다가 결국 최순실게이트라는 ‘핵폭탄’이 터지더군요. 편집국장시절 저는 최순실을 ‘정윤회의 부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왜 그리 깜깜이였는지 탄식해봐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탄핵정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 기자 시절의 경험을 살려 광화문 촛불시위현장에도 가보면서 탄핵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저는 국회의원 3백명 중의 한 명, 그것도 초선 비례대표일 뿐이었습니다. 국회 본회의 발언 등 고함도 질러보았지만, 거센 쓰나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니, 제 스스로 어떤 한계를 지레 설정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권은 일단 양비론이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언론인으로 배운 균형감각이나 양비론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쪽을 택해 목소리를 높여야 언론도 주목합니다. 그러면 정치적인 반대세력도 생겨나기 시작하고, 지지세력도 규합돼 자발적인 후원금이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탄핵정국이 악몽 같았다면 19대 대통령 선거 캠페인은 개인적으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큰 차이의 2등에 그쳤지만, 그 과정은 깜깜한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 희망을 되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사실 새누리당에서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탄핵정국의 여파로 후보조차 내기 어려웠습니다. 반기문과 황교안이 포기하자 겨우 찾아낸 후보가, 개성이 강한 홍준표 경남지사였습니다. 본인 말대로 ‘초상집 상주’ 역할을 한 것입니다. 처음엔 선거비용의 국고 보전 기준인 득표율 15%를 비관해 TV광고비도 민주당, 국민의당보다 3분의 1만 책정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4%를 얻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모두 우리 보수층들의 애정과 격려 덕분이었지만,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 캠페인에서 당의 미디어본부장을 맡아 미디어와 ‘전쟁’을 치렀습니다. 초기엔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로만 몰고 가는 바람에 군소후보 취급을 받았지만, 끈질긴 싸움 끝에 마지막엔 3강 구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모든 네트워크, 경험, 아이디어를 총동원했습니다. 당내에서 차츰 이름도 날리고, 몇 차례 TV출연 덕분인지 유세현장에서 초콜릿을 건네는 지지자들도 만났습니다. 조선일보의 명성을 더럽히진 않았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사실 초선의원이 선거대책위원회의 본부장을 맡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과분한 책임을 맡아 그저 당에 누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나도 이낙연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을 맡는 등 몸은 바쁘기만 합니다. 저도 이제 정치인으로서 몸집이 다소 커졌는지,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월 16일 의원총회에서 제가 한 발언을 소개해드리며 끝을 맺을까 합니다.

“이번 대선은 등 돌린 보수 민심이 ‘문 닫으라는 것은 좀 심하니까, 제대로 한번 야당 해봐라’라며 한번 용서해준 겁니다. 그동안 친박-비박 당권 싸움만 했지 한 게 뭐 있습니까. 정말 우리 당이 보수와 새로운 가치를 가지고 좌파에 대항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 초선들은 그동안 참아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만은 않겠습니다. 이제는 참지 않고 싸울 겁니다

김하성 기자 sungh905@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