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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직리 지석묘, 송국리 선사취락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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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직리 지석묘, 송국리 선사취락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고인돌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98)]

송국리 선사취락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고인돌이미지 확대보기
송국리 선사취락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고인돌
송국리유적도 우연한 사건을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그 상황은 매우 극적이었다.

1974년 지역 주민의 제보에 의해 발굴조사된 돌널무덤(石棺墓)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과 돌칼(石刀), 돌화살촉(石鏃), 대롱옥(管玉) 등의 껴묻거리(副葬品)가 나왔다. 이 중 비파형동검은 금강유역이 한반도 중・남부 청동기문화의 중심지임을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되었다.
1975년 농지확대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송국리유적이 자리잡은 구릉 약 45만㎡가 개간 대상지역에 포함됨으로써 3년에 걸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당시 모양이 원형이고 중앙에 돼지코처럼 두개의 기둥 구멍이 있는 집자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알려짐으로써 ‘송국리형 집자리’로 불리게 되었다.

이 외에 방형의 집자리도 확인되었는데, 여기서는 불에 탄 볍씨가 많이 나와 송국리 사람들이 쌀농사를 지었음을 알려 주었다. 1980년대에는 좁은 면적에 밀집해 있는 집자리들이 많이 확인되었다.


김경상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