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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원전으로 가는 길④] ‘소통(少通)’ 아닌 ‘소통(疏桶)’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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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원전으로 가는 길④] ‘소통(少通)’ 아닌 ‘소통(疏桶)’ 하려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2015년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고자 제1회 원자력안전협의회를 열었다. 이미지 확대보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2015년 고리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고자 제1회 원자력안전협의회를 열었다.
[글로벌이코노믹 오소영 기자] ‘소통’ 정부의 고리 1호기 폐로 계획은 한 단어로 요약된다. 정부는 시설 해체부터 부지 복원까지 전 과정에서 주민들과 대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보다 앞서 원전을 운영한 선진국들도 지역주민과의 대화를 강화했다. 영국 SSG와 프랑스의 CLI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원전 지역 협의체의 권한과 구성을 법제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원전 지역협의체 구성과 권한 법제화한 프랑스·일본


2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고리 1호기 폐쇄와 관련 ‘소통과 협력하는 자세’를 3대 원칙 중 하나로 밝혔다. 주민 공청회 등을 통해 해체부터 복원까지 전 과정에서 주민과 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보다 먼저 폐로의 길을 걷거나 원전을 운영하는 선진국들도 주민 소통을 강화했다. 영국의 SSG와 프랑스의 CLI는 대표적인 지역협의체다.

전홍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원전 소재지 안전협의체 비교 연구’를 보면 두 기관은 공통적으로 협의체 구성부터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등을 포함시킨다.

영국은 SSG 의장을 지역주민 대표가 맡는다. 환경단체와 시의원 대표 등도 협의체에 참여한다. 프랑스 CLI는 원자력기본시설의 CLI에 관한 시행령에 따라 과반수 이상이 지역선출 대표로 구성된다. 노동조합과 환경보호단체 등도 각각 CLI 정원의 10% 이상이어야 한다.

정보 획득 권한 역시 주어진다. 프랑스는 CLI가 원전사업자에게 정보 요청이나 질의 시 사업자는 접수 후 8일 이내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SSG 정기회의에 원전 운영사 대표가 참석해 주민 대표들에게 보고하며 질의에 응하도록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원전 운영사와 안전협정을 체결해 원전과 관련된 결정에 영향력을 확보한다. 지자체는 안전협정을 근거로 원전 입지 결정과 계속 운전 여부, 해체 등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한다.

전홍찬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전 사고가 생기면 지역 주민이 1차적인 피해를 보는 만큼 안전 문제에 관여할 권한이 있다”며 “대부분 원자력 발전소가 폐쇄됨으로써 지역 경제가 붕괴될 우려가 있으므로 부지 활용과 폐로 속도 등도 주민과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역별 협의체 법제화로 소통 강화해야”


정부도 현재 원전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원자력안전협의회와 민간환경감시기구 등이 대표적이다.

우선 원자력안전협의회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그 소속 기관 직제’에 설립 근거를 둔다.

민간환경감시기구는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설립된다. 운영은 지자체별 조례에 근거한다.

고리 1호기가 위치한 부산 기장군의 경우 ‘부산광역시 기장군 고리원전 민간 환경감시기구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가 1988년 제정됐다.

조례에 따르면 구성은 행정구역 읍면장이 추천한 5명과 기장군의회 의원 2인 등이다. 기구 위원은 지자체 추천으로 일부 구성될 뿐 프랑스처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선발한 대표가 참여하도록 명시돼 있지 않다.

환경단체나 노동조합 역시 협의체 구성에 반드시 포함되도록 법에 적시되진 않는다. 조례에는 ‘지역발전과 환경 및 원자력 분야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만 모호하게 적혀있다.

특히 이들 기구는 원전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자체나 지역 주민들이 입회조사 권한을 갖지 못한다. 조치 요구권 자체도 법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영광 원전 범군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노병남 영광군 농민회 부회장은 “지역별 협의체가 명확히 법제화되어 있지 않아 합의 사항이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소통 기구가 아니라 소식 기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 부회장은 “가령 핵발전소가 운영이나 안전에 결함이 생겼을 때 조사 권한을 민간에 주는 등 권한을 법적으로 명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세연 녹색연합 활동가는 “원전 관련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주민들은 문자로 통보받으며 일방향의 소통이 주가 됐다”며 “체계적·민주적 소통이 되려면 원전 지역별 소통기구가 법제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