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아들‧딸에게서 어머니가 심리적 독립하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 마음산책(118회)] 고부갈등과 장서갈등

기사입력 : 2017-06-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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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보다 매울소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집살이는 어려웠다. 요즘은 오히려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한다는 말도 떠돌지만 아직도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시(媤)’자가 들어가는 것은 다 어렵고 피하고만 싶다. 하지만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서 못한다’라는 속담에서 보듯이 미운 며느리와 사는 시어머니의 마음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일이 예상대로 안 되고 자꾸 꼬일 때 우리는 “굿이라도 해야 할까보다”라고 말하듯이 집안에 흉사(凶事)가 많이 생기면 당연히 굿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굿을 하고 싶어도 맏며느리가 춤추는 꼴을 못 보겠다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잘 드러난 속담이다. 소위 ‘고부(姑婦)’간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없앨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부중심 문화로 바뀐 한국현실

자녀에게 집착하지 말고 놔둬야

지나친 간섭은 자녀 행복 망쳐

모든 나라에서 우리처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부갈등은 ‘부자(父子)’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주로 나타난다.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관계에서는 ‘부부(夫婦)’ 관계를 중요시 하는 서구문화와는 다르게 남녀간의 성적 표현을 극도로 억제하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부부관계에서도 성적 욕구를 드러내고 만족하는 것을 억제한다. 결혼한 남녀의 성적 관계의 주된 목적은 단지 대(代)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양반집에서는 남편과 부인은 사랑방과 안방에서 따로 거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아들을 낳을 수 있는 길일을 택해 합방을 하곤 했다.

이런 문화에서 부인과 충분한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한 남자들은 집밖에서 그 욕구를 채우곤 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살아가는 부인은 남편과의 관계에서 만족하지 못한 욕구를 아무리 가까워도 흉이 안 되는 남자, 즉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곤 했다. 이런 관계에서 아들은 ‘연인(戀人)’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아들에게 새로운 젊은 여자가 생긴다는 것은 어머니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아들의 여자, 즉 며느리가 예쁘게 보일 리가 없었다. 자신의 연인을 뺏어가는 여자를 좋아할 여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부자’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에서만 나타나는 고부갈등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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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과 장서갈등의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듯이 어머니도 자신을 찾고 자신만의 일을 가짐으로써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동양문화와는 대조적으로,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에서는 성적 만족은 남편과 부인 사이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부부 이외의 이성관계는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문화에서는 장모와 사위 사이에 갈등이 심했다. 지금도 서구 영화를 보면 ‘퇴근 후 맥주를 한 잔 하자’는 제안에 ‘오늘 집에 장모가 오기 때문에 일찍 가야한다’고 말하는 동료가 있다면 나머지 동료들이 이구동성으로 “I am sorry”, 즉 “안됐다”라고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고 하면서 ‘씨암탉’까지 잡아주며 위해주는 장모에게만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성인이 된 자녀 자신의 삶 살아야

괴롭고 힘든 일 해결할 능력 생겨

진정한 심리적 성숙 이룰 수 있어

하지만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장모와 사위’의 관계, 즉 ‘장서(丈壻)’ 간의 관계가 새로운 가족 관계의 갈등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장모등쌀’에 살기 어렵다면서 이혼까지 생각한다는 사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시시콜콜한 일까지 간섭하는 극성맞은 장모 때문에 오히려 부부간의 금슬마저 금이 간다고 하소연한다. 장모 때문에 오히려 부인까지 보기 싫어진다는 남편도 있다. 딸은 딸대로 어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급격히 서구적인 ‘부부’관계 중심의 문화로 이동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부부’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장모와 사위간의 관계가 나빠질까? 요즘 아들을 결혼시킨 어머니들끼리 “장가보내놓고 보니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더라”는 자조적인 말들을 많이 한다. 기껏 정성을 다해 키워 결혼까지 시켰더니 결국 어머니의 품을 떠나 며느리에게 가버리더라는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이제는 딸에게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고부갈등이나 장서갈등에는 모두 어머니가 중심에 있다. 고부갈등은 아들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이다. 반면에 장서갈등은 딸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사위가 갈등하는 것이다. 이 두 관계에서 모두 어머니가 들어가는 것은 물론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녀들과 정서적으로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자녀 양육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리고 어느 어머니나 다 자녀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다만 그 바람이 지나쳐 오히려 자녀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방해하고 급기야는 망치기까지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부부중심의 문화에서는 왜 어머니가 아들보다 딸에게 더 집착을 할까? 우선 아들과의 관계는 딸과의 관계와 큰 차이가 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낳아주고 키워주신 어머니는 어른이 되어서도 고맙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이성인 부인에 대한 사랑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의 경우에는 감정적 친밀도가 급격히 부인에게 전이된다. 그리고 아들이 장성하면 여자인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이 살아가는 남성적인 세계에 대해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가부장적인 ‘부자’ 문화에서는 아들과 며느리 사이의 관계를 억지로 멀리할 수 있지만, 부부 중심의 문화에서는 어렵다. 따라서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아들을 며느리에게 뺏길 수에 없다.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는 사뭇 다르다. 우선 여성인 딸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어머니가 해왔던 ‘살림살이’를 하게 된다.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하며 자녀를 키우는 일은 한평생 어머니가 해왔던 일이다. 이 일은 이제 새로 가정을 꾸린 딸이 되풀이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에서 해왔던 아픔과 실수를 딸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아들에게 쏠렸던 어머니의 관심과 애착이 딸에게로 쏠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원했지만 결혼생활에서 얻지 못했던 ‘꿈’을 딸을 통해 이루려는 무의식적 소망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는 남편에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과 불만을 사위에서 전가한다. 딸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어머니들은 직접 사위에게 조언을 해주게 된다. 고부갈등에서는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며느리를 학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장서갈등에서 어머니는 딸의 삶 전반에 걸쳐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부간의 갈등이나 장서간의 갈등의 원인은 어머니가 자녀와, 그리고 자녀가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분리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비록 아들이나 딸을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평생 품에 끼고 살아야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때가 되면 떠밀어서라도 자녀를 품에서 놓아주어야 한다. 어린 자녀가 자라나면서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부모도 특히 어머니도 자녀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른들도 자녀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자녀를 사랑해서 돌봐준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이대지만 이는 합리화에 불과하다. 사실은 자녀를 떠나보낸 후 오는 삶의 허전함과 무의미함이 두려워 자녀를 계속 곁에 묶어놓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찾고 자신만의 일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교육하고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결혼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엄마’로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어머니가 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한평생 그것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우리 삶에서 양육이 최우선시 되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다.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그것을 실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양육이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과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자녀 양육의 시기가 지난 어머니들의 경험과 자원을 자신과 사회를 위해 창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듯이, 모든 것이 지나치면 부족함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성인이 된 자녀는 이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괴롭고 힘든 일도 자신들이 해결해가야 한다.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서만 진정한 심리적 성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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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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