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동북쪽과 동남쪽에는 동해가 펼쳐져 있고, 뒤쪽에는 후포항과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이러한 입지는 바다와 관계가 깊은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보인다.
매장 형태는 인위적으로 구덩이를 판 것 같지는 않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큰 바위를 그대로 둔 채 인골과 돌도끼 등을 겹쳐 묻은 것으로 보인다. 노출된 지름 4m 내외의 구덩이에서 간돌도끼(磨製石斧) 130여 점을 비롯해서 대롱옥, 구두주걱 모양의 장신구 등 모두 170여점의 석기와 다수의 인골이 출토되었다.
인골은 구덩이 중앙부를 중심으로 놓인 것 같다고 한다. 인골의 뼈는 무질서하나, 간돌도끼가 비교적 가지런히 놓여 있는 점을 근거로 세골장(洗骨葬)으로 묻힌 것으로 보았다. 이 유적에는 남녀 비슷한 비율로 최소 40인 이상이 묻혔으며, 그들은 주로 20대 젊은 층으로 판명되었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