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파파라치]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

기사입력 : 2017-08-18 11:19 (최종수정 2017-08-1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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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


올해는 제주에서 짧은 휴가를 보냈다. 수만 그루의 나무 향을 품은 절물휴양림과 곳곳에서 솟아나는 풍혈로 땀을 식혀준 거문오름은 제주의 진면목이었다.

이중섭은 41세에 병으로 죽었다. 그가 죽은 후 며칠 뒤, 그의 시신을 지인들이 수소문해서 확인 했다. 지인들은 밀린 병원비를 냈다. 제주도에 있는 그의 전시관에는 그가 그의 아내, 두 아이와 일 년 동안 서귀포에서 그림을 그려준 대가로 얻어 기거한 1.4평의 방이 전시되어 있다.

어른 둘 사이에 아이 둘이 끼어 넷이 모로 누웠으리라. 아내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일본으로 자식들과 아내를 보냈다. 그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지만 처자식에 대한 외로움이 삶의 비루함을 버텨내게 만들었다.

그의 그림에는 게가 자주 등장한다. 두 아이 태현, 태강과 서귀포 앞 바다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져와서 게를 삶아먹은 것이 미안해서 그린 것이다. 이중섭의 전시관엔 같은 그림엽서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자식들이 싸울까 염려되어 두 장을 같이 보냈던, 가족만을 향했던 그의 배려다.

영양 실조와 간염에 시달린 말년의 그에게 가족은 절망의 대상이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가족이었다. 3층의 전망대에 올라 그가 늘 바라보던 섶섬의 앞바다를 바라봤다. 그는 바다 위 수평선을 바라보며 가족과의 재회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의 아내 마사코는 지금 96세로 도쿄에 살고 있다.

두모악의 주인 김영갑은 12년전의 사람이다. 2005년 5월 눈을 감았다. 죽기 몇년 전 손이 떨려 사진기를 놓치다가 루게릭병에 걸린 것을 알았다. 그는 제주를 사랑해서 제주로 와서 살았다. 그는 용눈이오름을 유독 좋아 했다. 그의 갤러리 안, 그의 방 옆에선 TV를 통해 투병중이던 그의 인터뷰가 흘러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목근육과 혓바닥으로 만드는 소리가 아니고 구강의 골격들을 움직여 입안의 공기들을 밀어내는 소리였다. 용눈이 자료를 정리하는데 자료가 많이 부족한 걸 이제야 알겠다고 했고, 뒷사람이 이어주길 바란다고 간신히 말했다.

그의 눈빛은 남기지 못한 수천, 수만의 용눈이오름으로 가득해서 아득해 보였다. 그가 남기고 간 용눈이오름에 올랐다. 평화로운 자태에 세상을 포근히 감싸는 듯한 능선이었다. 말들이 길을 막아섰는데 그도 말들과 마주 쳤는지 잠시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제주는 평온하고 아늑했다.

죽음을 앞둔 그가 본 것도 같았던 것일지 궁금했다. 그 때 내 눈에 맞은편으로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들어왔다. 둘은 따뜻한 일광을 받으며 부모와 자식처럼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전날 봤던 이중섭의 초상이 떠올랐다. 가족은 이중섭에게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죽음을 통보받은 김영갑에게도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용눈이오름은 희망이자 절망이었을 것이다. 이중섭에게 가족과 아내 같은 존재가 김영갑에겐 제주와 용눈이가 아니었을까?

꺼지지 않는 예술혼은 희망과 절망이 마주치는 곳에서 태어난다. 제주 서귀포 이중섭전시관과 김영갑 갤러리엔 41년을 살고 간 이중섭과 48년을 살고 간 김영갑이 그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글·김시래 (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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