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윤리위원회가 25일 관보를 통해 대통령과 비서관 등의 재산 신고액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신고액은 장부가 기준으로 시가보다 적은 경향이 있다.
특히 부동산과 그림 등은 그 차이가 심할 수 있다.
신고가만을 기준으로 해도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 참모진들의 재산은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하면 양극화 해소를 외치는 서민의 정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막상 그 최고 수뇌부의 재산명세를 보니 그리 간단치는 않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신고재산은 93억1900만원이다.
실제 거래가 기준으로 100억원대 재산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명세를 보면 유가증권이 가장 많다.
본인과 배우자, 부친, 장남 이름의 주식 등이 총 53억7000만원이다.
가족 명의의 예금도 23억3100만원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부부 공동명의의 아파트는 13억500만원으로 신고됐다.
전남 해남 계곡면 일대와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 있는 토지의 가액은 2억5900만원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재산이 100억원대에 달한다는 사실을 보고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적지않은 모양이다.
장하성 실장은 한평생 대학 교수로 경제정의 실현의 사회운동에 앞장서 왔다.
사회운동을 해 온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은 가난한 서생이다.
그런 탓인지 청와대 참모진의 재산이 밝혀진 후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서는 장하성이 검색어 1위에 올라있다,
많은 서민들이 흙수저 출신의 공직자에 환호하는 것은 흙수저인 만큼 서민의 어려운 사정을 잘 헤아려 국정에 반영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 본다면 서민의 정부를 기대해 온 많은 민초들의 입장에서 최고 정책 결정권자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100억원대 재산은 뜻밖일 수 있다.
그러나 흙수저 출신이라고 반드시 흙수저를 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흙수저 출신이지만 일단 출세한 다음에는 흙수저들을 더 가혹하게 다루는 공직자들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처지에 따라 표변하는 흙수저보다 금수저이지만 진심으로 흙수저의 처지를 헤아려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마음이 더 소중할 수 있다.
필자는 장하성 정책실장과 같은 학교에서 적지 않은 기간을 함께 근무했다.
평소 그의 행동과 철학은 금수저 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항상 사회 정의와 형평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우선에 두었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고려대 경영대학 학장으로 재직할 때이다.
당시까지만해도 고려대는 학점이 우수한 학생들을 골라 장학금을 주는 관행이 있었다.
장하성 학장은 어느 날 성적 우수 장학생들의 학부모를 학교로 초치했다.
장 학장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면서 그 학부모들의 공을 치하했다.
그런 다음 학부모들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다.
자녀들이 장학금으로 받은 돈을 다시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장학금을 다시 내어 놓으라는 장 학장의 요구에 부모들은 처음에 쇼크를 받았다.
그러나 그 장하성 학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다음 학부모들은 하나 둘씩 장학금을 내놓았다.
장 학장은 그 돈으로 또 다른 장학금을 만들어 가난한 동료 학생들에게 돌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릴레이 장학금이다.
가난한 학생들은 구조적으로 높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
남들이 공부할 때 밤 새워 아르바이트를 하자면 학점 따기가 그만큼 불리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을 고려하여 성적 우수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 가정적으로 여유있는 부모들에게 그 돈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양보토록 유도한 것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는 명예를, 가난한 학생에게는 학자금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장하성 학장의 릴레이 장학금은 이후 학교 전체로 확산되어 갔다.
요즘 고려대학교는 학교 교내장학금을 수요 베이스로 지급하고 있다.
학생들의 가정형편에 따라 교내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성적 기준 교내장학제도는 아예 사라졌다.
그 바람에 요즈음 고려대학교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빈부의 차별이 없어졌다.
그 시발점이 바로 장하성 학장의 릴레이 장학금이다.
항상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장하성의 정신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20여 년 간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 시민운동을 주도했다.
이 또한 재벌의 반칙을 막고 원칙에 따라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일 것이다.
2006년부터는 ‘장하성 펀드’를 만들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소액주주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벌었을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소액주주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장하성 실장을 빨갱이라고 부르지만 핀트가 어긋나 보인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할아버지대인 1세대는 소금을 팔아 큰 돈을 벌었다.
호남의 대 지주이자 만석꾼의 가문이었다.
할아버지 세대는 그 돈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1세대 3형제 모두 상하이 임시정부와 만주독립군에서 활약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장재식 전 장관이 장하성 정책실장의 삼촌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유명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장하성 실장의 4촌이다.
참여정부 시절 3년간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장하진 교수는 장하성 실장의 친누나이다.
동생 장하원 씨는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열린우리당 정책실장 등을 지냈다.,
또 그 아래 장하경은 광주대 교수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의 재산 중에는 그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도 포함되어 있다.
김대호 기자 yoonsk82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