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세계의 CEO 열전 ① 훙하이 궈타이밍(郭台銘) …5년내 삼성전자 잡는다

도시바 인수전 SK하이닉스 연합군에 패배, 그래도 鴻海의 꿈은 계속된다

기사입력 : 2017-09-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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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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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특별기획 세계의 CEO 열전 ① 훙하이 궈타이밍(郭台銘) …5년내 삼성전자 잡는다는 계획이다. 사진은 궈타이밍(郭台銘)



일본 도시바 인수전에서 SK 하이닉스와 애플 등 이른바 한·미·일 연합군이 승리했다.

이번 인수전에 가장 공을 들인 곳은 대만의 훙하이다.

한미일 연합군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훙하이는 도시바 인수로 반도체의 강자로 우뚝 서려고 했다.

특히 삼성전자를 잡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했다.

훙하이의 꿈은 홍하이 창업주 궈타이밍의 꿈이기도 하다.

훙하이는 궈타이밍이 창업했다. 한자 표기는 郭台銘이다. 영어권에서는 ‘테리 궈’로 쓴다.

궈타이밍은 1950년 태어났다. 부모는 중국 본토 대륙의 산시성 사람들이다. 한족인 아버지는 일제시대 경찰간부였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본토를 모두 장악할 때 국민당 정권을 따라 타이완으로 망명했다.

궈타이밍은 타이완 사람이지만 동시에 본토 산시성에 뿌리는 뚠 외성인이기도하다. 타이베이에서 초중고를 이수한 후 해운회사 실무자를 양성하는 타이완의 중국해사전과학교를 다녔다.

1971년 해운회사인 타이완 부흥항운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무역 업무를 하면서 바다 건너 해외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어느 날 한 친구로부터 플라스틱 제조 하청업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미국에 TV 플라스틱 리모컨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궈타이밍은 자신이 국제무대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스스로 플라스틱 회사를 차렸다. 회사이름은 훙하이 플라스틱이다. 창업연도는 1974년이다. 창업에 들어간 납입자본금 7400달러는 어머니로부터 받아 충당했다. 이 회사가 바로 훙하이 그룹의 모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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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박사 CEO 열전, 훙하이 궈타이밍 편... 5년 내에 삼성전자를 잡고 세계 1등으로 부상한다는 꿈을 꾸고 있다. 도시바 인수전에서 SK 연합군과 한판승부를 벌인 것도 훙하이의 꿈 실현을 위한 것이다.


훙하이가 처음 만든 제품은 흑백TV용 모니터다. 출범 직후 오일쇼크가 터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감축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그 바람에 플라스틱의 제조원가가 폭등했다. 궈타이밍은 지금도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한파의 시기라고 술회하고 있다.

은행 융자로 근근이 버티어 가던 중 1980년 기회가 왔다. 훙하이플라스틱이 유가파동 속에서도 원청회사와의 납품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사실이 없다는 것을 눈여겨 보고 있던 미국 아타리(Atari)사가 접근해왔다. 세계 최고의 게임기 제조회사인 아타리는 훙하이에 콘솔용 조이스틱과 게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온 것이다.

궈타이밍은 그 손을 잡았다. 아타리 납품을 계기로 TV 모니터는 그만두고 게임기와 PC용 부품회사로 변신했다. 회사이름을 훙하이정밀공업으로 바꾸었다. 제품 브랜드는 글로벌 무대에서 널리 통용될 수 있도록 폭스콘(Foxconn)이라고 명명했다. 이 폭스콘은 훗날 훙하이정밀 공업의 영어 회사명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궈타이밍은 그해 미국 대륙 대장정에 나섰다. 11개월 동안 미국의 전역을 돌면서 컴퓨터와 게임기 회사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방문을 했다. 물론 시장조사는 사전에 완벽하게 했다.

미국 기업인들을 만나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품들을 정확하게 찍어내 더 싼 가격으로 양질의 부품을 공급하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아타리 납품사라는 사실도 강력하게 어필했다.

궈타이밍의 이 시도는 큰 성과를 냈다. 수많은 미국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물량의 주문을 받았다.

당시 미국의 PC와 게임기 산업은 기술 발전 속도가 무척 빨랐다. 생존 경쟁도 심했다. 질 좋고 싼 부품의 확보는 바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대한 변수였다. 궈타이밍은 그러한 재계의 사정을 정확하게 꿰뚫어 거래를 성사시켰다. 당시 궈타이밍이 대장정을 하며 미국기업들로부터 따온 주문은 훙하이 그룹이 재벌로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발판이 됐다.

궈밍타이의 첫 부인은 동갑나기인 린슈루(林淑如) 여사다. 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1976년생인 아들은 영화회사 오너다. 1978년생 딸은 금융인이다. 린여사는 2005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첫 부인이 사망한 후 궈타이밍의 여자관계는 매우 복잡했다. 숱한 여배우 등과 염문을 뿌렸다. 그러다가 2008년 24세 연하인 발레 무용가와 결혼했다.

그가 궈다이밍의 두 번째 부인인 쯩신잉(曾馨瑩) 여사다. 쯩 여사와의 슬하에 2009년생 아들과 2010년생 딸이 있다. 2016년에 또 한 명의 딸을 출산했다.

궈밍타이의 경영철학은 고객 제일주이다. 인재는 네 번째, 관리는 세 번째, 설비는 두 번째, 그리고 고객은 첫 번째로 중요하다는 것이 훙하이 그룹의 기업이념이다. 인재 제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한국의 삼성과는 정반대다.

훙하이는 전 세계에서 전자 제품과 부품을 가장 많이 제조하는 하도급 기업이다.

아이폰 등 애플 전자제품의 60% 이상을 훙하이가 만들고 있다.

회사의 공식 명칭은 훙하이 정밀공업 주식회사(鴻海 精密工業 股公司).

훙하이의 포춘 랭킹은 글로벌 31위다.

전자업체로서는 세계 3위다. 스스로 제품을 제조하여 팔기도 한다. 이때 브랜드가 폭스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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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박사 CEO 열전, 훙하이궈타이밍 편... 5년 내에 삼성전자를 잡고 세계 1등으로 부상한다는 꿈을 꾸고 있다. 도시바 인수전에서 SK 연합군과 한판승부를 벌인 것도 훙하이의 꿈 실현을 위한 것이다.


훙하이는 종업원 수가 무려 130만명이다. 대부분은 중국 본토 사람들이다.

훙하이가 중국에 처음 진출한 것은 1988년.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서로 대화도 일절 없던 냉전시대에 훙하이는 중국 선전에 과감하게 공장을 지었다.

훙하이는 또 인수합병에도 열을 올렸다.

하도급 생산을 하면서 앞선 기술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원청업체가 유동성 위기 등으로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때 인수하는 전략이다.

모토로라의 휴대폰, 소니의 TV, 시스코 셋톱박스, 델 컴퓨터 PC, CMI의 LCD, 사이버 텐의 EMS, 프리미엄 테크의 디지털 카메라와 게임기 SCI의 PC 그리고 샤프의 TV와 LCD 공장들을 잇달아 인수했다.

이번에 도시바인수에는 일단 실패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잡겠다는 꿈은 결코 버리지 않았다.

궈타이밍는 5년 내에 배신자 삼성전자를 잡겠다며 벼르고 있다.

궈타이밍의 호언장담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대호 주필 yoonsk828@g-enews.com 김대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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