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의 일상향(日常向)] 도토리와 먹방

기사입력 : 2017-09-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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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긴 추석 연휴를 코앞에 둔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넘쳤다. 제수용품과 선물을 미리 장만하려는 사람들과 휴일의 간식거리며 반찬 따위를 쇼핑하러 나온 사람들이 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시장을 좋아하는 개와 함께 그 틈을 비집고 다녔다. 시간은 흘러 다시 명절이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절이 익어가는 뒷산에도 있었다. 풀이 단정하게 정리된 산책로를 벗어나 사람들은 풀섶을 뒤지며 도토리를 찾았다.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굳이 다람쥐들의 먹이까지 샅샅이 긁는 사람들의 심리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소유자의 동의 없이 산채나 약초, 도토리, 밤, 버섯 등을 채취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산림 관련법을 그들에게 들먹일 수는 없었다. 괜한 시비로 받아들여질 것이 자명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산은 천연의 보물창고였다. 봄이면 여자들은 산에 달라붙어서 냉이며 씀바귀, 쑥을 캤다. 그렇게 상에 오른 냉잇국 안에는 봄이 말갛게 풀어져 있었다. 쑥버무리는 주전부리가 부족했던 봄날의 별미였다. 얼굴에 열이 올라 시뻘게질 때까지 뛰어놀다가 꿀벌들을 쫓으며 따 먹는 아카시아 꽃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나뭇잎이 가을에 물들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도토리와 밤을 주워 개선장군처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이면 낫을 들고 칡을 캐러 오르는 것이 일과였다. 즙이 가득 밴 칡을 껌처럼 씹다가 뱉으면 긴 겨울날의 무료한 입안이 달래졌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기에 혀는 다른 맛을 욕망하지 않았다.

비닐봉지며 천으로 만든 가방 안에 열심히 도토리를 담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시절의 추억을 기억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꿈이 사라진 나이, 간절함이 사라진 사람들 간의 사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도토리를 줍는다는 건, 기억의 심연에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행복한 순간을 길어 올리는 의식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추억들은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 더 낫다. 세상은 변했고 산은 더 이상 부족한 먹거리를 얻는 곳이 아니다. 산은 산이 품고 있는 생명들의 것이다. 굳이 그 생명들의 것을 빼앗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인간들의 사정은 나아졌다. 추억을 핑계 삼기엔 시장에만 나가도 그들의 혀가 추억하고 싶어 하는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다. 사람들은 그저 도토리가 공짜이기 때문에 산을 더듬는 것이다.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 하는 다람쥐들의 간절함 앞에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염치를 차리는 것이다. 도토리는 부디 그것이 있어야 할 곳에 돌려주기 바란다.

TV만 틀면 이른바 먹방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인터넷 방송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혀를 매개로 펼쳐지는 욕망의 레시피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그 광기가 자극하는 진짜 욕망이 돈을 향해 교묘하게 이어져 있음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게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혀를 사로잡는 맛의 향연은 더욱 강도를 높여갈 것이다. 뇌에 욕망이 주입된 사람들은 혀 위에 그 욕망을 얹기를 욕망하게 마련이다. 그 욕망은 어떤 식으로든 돈에 대한 욕망으로 사람을 내몬다. 혀 위에 무엇을 얹을 수 있을까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돈이다. 자극받은 뇌와 혀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쓰면 쓸수록 돈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은 증폭된다. 먹방은 계속되고 욕망은 커져간다. 자본의 논리는 늘 동일하다.

다람쥐들의 혀가 도토리 외의 새로운 것에 눈을 떴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다람쥐들은 그래서 도토리를 구해야 한다. 먹고 살며 새로운 생명들로 이어지기 위해서 다람쥐들에게는 도토리가 필요하다. 욕망이 혀의 것이든 뇌의 것이든 부디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닌 것에는 마음을 돌리자. 명절에 차고 넘칠 음식 앞에서 잠시나마 인간의 몰염치 탓에 굶주리고 있을 다람쥐들을 떠올릴 수 있기를. 누군가에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오종호 (주)터칭마이크 대표 오종호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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