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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65돌 ‘다이너마이트 김’에서 ‘김승연 회장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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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65돌 ‘다이너마이트 김’에서 ‘김승연 회장 뚝심…’

[글로벌이코노믹 오소영 기자] 한화그룹이 9일 창립 65주년을 맞았다.

1952년 한국화약으로 출발한 한화그룹은 재계 순위 8위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한화의 65년을 ▲다이너마이트 김 ▲1만5000t ▲절반 ▲뚝심 등 네 가지 키워드로 돌아봤다.
◇ 다이너마이트 김

한화그룹의 전신 한국화약. 이미지 확대보기
한화그룹의 전신 한국화약.


‘다이너마이트 김’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현암 김종희 선대회장의 호칭이다. 김 선대회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약을 공급하던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해 화약과 인연을 맺었다.

김 선대회장이 관리인으로 일할 때 6·25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홍제동 화약고에는 3000개의 다이너마이트가 있었고 김 선대회장은 전쟁 중에도 홍제동 사택에 머물며 다이너마이트를 지켰다. 그때 생긴 호칭이 ‘다이너마이트 김’이었다.

화약에 대한 열정은 1952년 조선화약공판 인수로 이어졌다. 김 선대회장은 조선화약공판 매각입찰에 참여해 운영권을 획득, 그해 10월 한화그룹의 전신인 한국화약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이후 김 선대회장은 국산 다이너마이트 개발에 돌입한다. 국내에 다이너마이트 기술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김 선대회장은 세 명의 기술자를 간신히 찾았다. 김 선대회장은 본인의 월급보다 6배 많은 봉급을 주며 다이너마이트 개발에 열을 다했다. 마침내 1957년 다이너마이트 원료로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을 개발을 성공하면서 한국화약은 빠른 성장세를 이뤘다.
한국화약은 이를 기반으로 기계, 석유화학, 무역, 에너지 등으로 업종 다각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1964년 신한베아링공업을 인수해 기계 분야에, 1965년 한국화성공업(현 한화케미칼·한화첨단소재)을 설립해 화학 분야에 진출했다.

◇ 1만5000t

한국화성공업은 국내 최초로 PVC를 생산했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화성공업은 국내 최초로 PVC를 생산했다.


1만5000t은 1968년 한국화성공업의 PVC(폴리염화비닐) 생산량이다. 한국화성공업은 국내 최초 PVC 생산 기업으로 출발했다. PVC는 전선피복과 필름시트, 장판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대표적인 범용 화학제품이다.

1만5000t의 생산량은 현재 88만t까지 늘어났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기준 중국 닝보와 국내에서 각각 35만t, 53만t의 PVC를 생산한다.

이같은 성장에는 1980년대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의 지분 인수가 기폭제가 됐다. 1981년 선대회장의 임종으로 제2대 회장에 취임한 김승연 회장은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의 M&A(인수합병)을 추진한다.

당시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의 적자는 각각 80억원, 430억원이었다. 이에 주주들은 1982년 5월 주주총회에서 “사업 전망이 불투명한 한국다우케미칼과 합병할 시 경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합병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러 고비 끝에 김 회장은 두 회사를 인수했고, 그 결과 1981년 1조600억원에 그친 그룹 매출이 1984년 2조1500억원으로 크게 올랐다.

이후에도 김 회장은 대형 M&A를 잇따라 성공시켰다. 1986년 한양유통을 인수해 오늘날의 한화갤러리아로 키웠고,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해 보험업에도 뛰어들었다. 2015년에는 삼성그룹의 석유화학 및 방위 산업 계열사를 인수했다.

◇ 절반

한화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미지 확대보기
한화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며 한화는 위기에 직면한다. 당시 한화그룹의 부채 비율은 700%를 넘었다. 이에 김 회장은 1998년도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김 회장은 화학, 기계, 자동차부품 등 여러 분야의 합작법인 지분을 처분했다. 대표적으로 한화종합화학은 한화바스프우레탄과 과산화수소사업부, 폴리메틸메트아크릴레이트(PMMA)사업을 매각했다. 사화매립지와 인천공장도 매각됐다.

대규모 구조조정 결과 32개사나 됐던 계열사는 절반인 16개로 줄었다. 한화는 빠른 구조조정으로 협조융자를 받은 11개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빚을 모두 갚게 됐다. 1999년 부채 비율은 200%대로 떨어졌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에 성공하며 국내는 물론 산케이신문, 로이터통신 등에서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별명을 얻었다.

◇ 뚝심

한화큐셀이 2010년 중국 솔라펀 파워홀딩스를 인수했다. 이미지 확대보기
한화큐셀이 2010년 중국 솔라펀 파워홀딩스를 인수했다.


‘‘의 결과물이다. 한화그룹은 한화케미칼이 2010년 중국 솔라펀 파워홀딩스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2012년 독일 기업 큐셀을 인수, 한화큐셀을 출범시켰다.

당시 태양광 사업은 침체기였고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대기업 그룹들은 사업을 포기했다. 더구나 큐셀은 누적 영업적자가 46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태양광에 대한 지원을 지속했고 한화큐셀은 2015년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한화큐셀코리아의 2015년 영업이익은 236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934억원으로 늘었다.

한화큐셀은 국내와 말레이시아, 중국 등 다양한 생산거점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셀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 1위이고 모듈은 지난해 판매량 5위다”라고 밝혔다. 태양광 전문매체 PV테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화큐셀의 태양광 셀 생산 능력은 57GW다.

한편 한화그룹은 창립기념 행사를 봉사활동으로 대체한다. 한화그룹은 지난 2007년부터 창립기념일에 한화그룹 24개 계열사, 57개 사업장, 30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주거환경 개선과 농촌 일손 돕기, 환경정화 등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오소영 기자 osy@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