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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겜문학] '데스티니 차일드' 19금 넘나드는 성인게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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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겜문학] '데스티니 차일드' 19금 넘나드는 성인게임 등장

프로이트가 좋아할 그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

지난해 10월 출시된 넥스트플로어의 수집형 모바일 RPG(역할수행게임) '데스티니 차일드'. 출시도 되기전에 일러스트가 선정적이라며 도마에 올랐다. 이 글은 데차 선정성 논란에 바치는 일종의 항변이다. 사진=노혜림 디자이너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 10월 출시된 넥스트플로어의 수집형 모바일 RPG(역할수행게임) '데스티니 차일드'. 출시도 되기전에 일러스트가 선정적이라며 도마에 올랐다. 이 글은 데차 선정성 논란에 바치는 일종의 항변이다. 사진=노혜림 디자이너
[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얼마 전 작고(作故)한 마광수 작가는 문단의 뜨거운 감자였다. 대학생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다룬 <즐거운 사라>는 90년대 음란하다는 이유로 정부당국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됐다. 일명 필화사건이다. 고인은 살아생전 지나친 성 엄숙주의가 사회를 망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 지금 와서 보자면 즐거운 사라는 그다지 야하지 않은 작품이다. 우리 사회가 90년대 보다 야해졌든가, 엄숙주의가 얼마만큼 해체 됐든가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 한국에 10등신의 미녀를 앞세운 성인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데차)>가 등장했다. 출시 전부터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가슴이 흔들리고 필요 이상으로 여성 캐릭터들이 헐벗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쉽게 말하자면 야한 게임은 안 된다는 엄숙주의가 발동한 것. 보수정부 ‘악의 축’으로 규정됐던 ‘게임’이란 카테고리에 ‘선정성’이란 키워드까지 곁들였으니 어찌 보면 게임 기획 당시부터 논란은 잉태돼 있던 셈이었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 벗었다고 선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박물관에 갈때 아이들에게 안대를 씌워야 할 거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만들때는 신중해야 한다. 상징성, 핍진성, 진실성 등 다양한 가치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 벗었다고 선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박물관에 갈때 아이들에게 안대를 씌워야 할 거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만들때는 신중해야 한다. 상징성, 핍진성, 진실성 등 다양한 가치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차는 ‘돌직구’였다. 왜 게임이 야하면 안 되냐는 항변처럼 들렸다. 성인이 된다는 건 의무뿐만 아니라 권리를 동시에 획득하는 일이 아니든가. 성인이란 ‘섹스(SEX, 性)’를 말할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한국은 성인 게임의 불모지다.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게임유아론과 ‘방정치 못한 일’이라는 유교적 엄숙주의가 결합한 결과다. ‘한국 성인 게이머들은 야한 게임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데차는 권리장전을 선포했다. 데차는 출시 이후 오픈마켓 상위권을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얼마만큼 한국 유저들이 성인 게임에 목말라왔는지를 방증하는 결과다. 마광수 작가가 데차를 알았다면 ‘헤비 과금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근대 사상을 열어젖힌 거인 중 한명인 프로이트는 사회가 성적 욕망에 의해 추동(推動)된다고 역설했다. 겉으로 보이는 자아인 ‘에고’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거대한 ‘이드(원초아)’가 꿈틀대고 있다는 설명이다. 프로이트 사상의 핵심은 인간이 변태라는 것이 아니라 성적 욕망의 자연스러운 분출이 건강한 자아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마음속 판사라고 할 수 있는 슈퍼에고 ‘초자아’에게 지나치게 억눌린 성욕망은 왜곡돼 콤플랙스로 남거나 더 큰 트라우마로 잠재된다.

90년대 오락실에 한 대 씩 비치돼 있었던 카네코의 '갈스 패닉'. 땅따먹기 방식이 게임이지만 성인들도 달라붙었던 그 게임이다. 지금와서 보자면 '애들 장난'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일러스트다. 이미지 확대보기
90년대 오락실에 한 대 씩 비치돼 있었던 카네코의 '갈스 패닉'. 땅따먹기 방식이 게임이지만 성인들도 달라붙었던 그 게임이다. 지금와서 보자면 '애들 장난'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일러스트다.

각종 조치로 재갈이 물려진 한국의 성은 음지로 파고들며 괴물을 만들었다. 성인 망가(일본 만화)는 인터넷에 범람하고 각국의 포르노가 저마다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다. 빈약하다 못해 앙상한 성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의 성의식은 어떤가. 포르노의 피스톤 운동과 성애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이 ‘몰카 왕국’이란 오명을 얻게 된 데에도 어느 정도 굴절된 성욕과 성문화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청소년도 성인도 ‘성’을 좋아하지만 입밖에 ‘섹스’라는 말을 내뱉으며 낯을 붉힌다. 성은 금지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될 뿐이다. 금지 혹은 금기는 욕망을 만든다.

잠재인식을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프로이트. 그의 이론을 둘러싼 논란은 많지만 심리학과 철학에 그가 미친 막대한 영향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사진=돋을새김
잠재인식을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프로이트. 그의 이론을 둘러싼 논란은 많지만 심리학과 철학에 그가 미친 막대한 영향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사진=돋을새김

성인 게임인 데차를 출시 전부터 일러스트만 들어 선정적이라고 비판했던 건 척수반사적인 성 혐오증의 폐해다. 이 게임은 그야말로 프로이트적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주인공은 악마들이다. 악마는 ‘차일드’라는 이름의 수하들을 거느리는데 이들은 인간들로부터 분화된 욕망의 집합체다. 현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을 지고 고통 받던 인간들은 악마와 계약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함으로써 심적 부담을 덜게 된다. 악마와 계약한 인간과 그 인간에서 떨어져 나온 차일드들이 나누는 대화도 의미심장하다. 악마와 인간은 결국 한 몸이며 이 둘의 대화가 절실하다는 것, 욕망과 이성을 공평히 대하라는 프로이트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인도 설화가 생각난다. 지혜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달이 떠 있는 곳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만 들여 다 볼뿐 정작 달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종합적인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일러스트만 보고 척수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일부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말이다.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나쁜 게임이고 모시적삼을 입으면 ‘훌륭한 게임’이라는 잣대는 편협하다.

데스트니 차일드의 필살기 '드라이브'. 때리거나 맞는 등 행동을 하면 충전이 되며 100%가 되면 필살기가 나간다. 욕망의 분출이다.이미지 확대보기
데스트니 차일드의 필살기 '드라이브'. 때리거나 맞는 등 행동을 하면 충전이 되며 100%가 되면 필살기가 나간다. 욕망의 분출이다.

드라이브(Drive). 데차에서 사용되는 필살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시에 정신분석학에서 ‘충동’으로 해석되는 단어다. 충동을 방출해 괴물을 일소하는 데차의 차일드들과 성인들의 충동에 재갈을 물리려는 일부의 시선, 애착이 가는 건 단연 전자다. 필요한 것은 포르노적 판타지와 안전한 성을 구별할 수 있는 인식능력, 게임 리터러시(literacy)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더 많은 성인게임이 필요하다. 표본이 있어야 통계가 있다. 나쁜 성인 게임이 존재하기 위해선 이와 비교되는 좋은 성인게임이 존재해야 한다. 성인 게임이라는 카테고리가 매말라 버린 상태에서 관련 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제 2, 제 3의 데차가 한국에 출시되길 기대하는 이유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