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청동기시대의 무덤, 부여 산직리지석묘(하)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172)]

기사입력 : 2017-10-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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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산직리 지석묘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산직리에 위치한다. 고인돌(支石墓) 2기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1991년과 1992년에 발굴조사하였다. 금강의 지류인 연화천변에 자리한 저평한 구릉지대에 입지한다.

고인돌은 모두 대형의 판돌(板石)을 덮은 것으로 1호는 덮개돌(上石)이 580×370×130㎝의 크기인 거대한 기반식(碁盤式)이다. 조사에서 고임돌(支石)은 3매가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고, 지름 130㎝ 크기의 원형구덩이를 파고 점토를 채워 세우면서 10∼15㎝ 크기의 쐐기돌을 보강하여 축조하였음이 확인되었다.

2호는 690×460×110㎝ 크기의 덮개돌 하부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이다. 이들 고인돌은 파괴로 무덤방(墓室) 내부의 구조와 형식은 확인할 수 없다.

출토유물은 망치돌(石鎚), 갈돌(耉石棒), 돌도끼(石斧)편, 숫돌(砥石), 홈돌 등이 있다. 거대한 바윗돌로 만든 무덤인 고인돌은 보통 청동시시대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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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산직리 지석묘

지석묘가 있는 곳에 올라와보면 주변에는 대부분이 평지로 이곳만 살짝 올라와 있는 형태로 주변 지형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석성천이 흐르고 있어서 고인돌이 자리한 곳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2기의 묘가 나란히 위치한 이곳에는 여러개의 돌이 남아 있는데 발굴조사 결과, 4개의 받침돌을 갖춘 기반식 지석묘로 대표적인 덮개돌은 길이가 590㎝, 너비가 370㎝에 이를 정도로 큰 편이다.

지석묘라고는 하나 하부를 발굴해본 결과 공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고인돌이 놓인 곳의 하부에는 매장구조를 만들어서 시체를 안치할 수 있도록 해놓는데 그런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형식은 무덤형식을 따랐지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의 기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경상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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