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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와 미켈란젤로를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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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칼럼]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와 미켈란젤로를 만나고

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
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
2012년 4월 방영된 SBS 스페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를 보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젠가는 피렌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1999년 월드와이드웹이 전 세계를 강타할 당시 유럽을 방문한 지 18년 만에 다시 찾은 동유럽의 중심인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태리는 인터넷과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타고 있었다. 한마디로 슬로시티가 아닌 ‘느빠시티’(느리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였다. 여전히 길거리 카페에 수많은 사람들이 맥주 한 잔을 놓고 두 세 시간씩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 같으면 단숨에 원 샷으로 서너 순배 돌리고 남을 시간이다.

관광지, 유적지 심지어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길게 줄을 서면서도 천하태평의 표정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손에는 모두 대한민국 꼬레아가 만든 판도라 상자를 가지고 쉴 틈 없이 사색이 아닌 검색을 빠르게 하고 있었다. 마지막 여정지인 이탈리아에서 지금 필자는 피렌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높은 곳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펜을 잡았다. 피렌체는 세계적 거장들을 20명 이상이나 배출했다. 세계 3대 박물관은 대영, 루브르, 바티칸 박물관이다. 르네상스 3대 거장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다. 이들이 조합하여 만든 최고의 백미는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벽화이다.
10월 중순이지만 25℃가 넘는 뙤약볕에서 2시간 줄을 선 후에야 인류사에 영원불멸할 천재예술가 미켈란젤로의 명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참고로 미켈란젤로는 화가이자 시인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조각가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가 복원된 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몸으로 이루어진 신학의 거룩한 성소’라고 말했다. 시스티나 성당은 교항 식스투스 4세 때 만들어진 성당으로 바티칸 궁전 내부에 건축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성당의 천장화와 벽화를 그렸다. 빵과 포도주로 허기를 달래며 높이가 무려 40m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하루에 22시간씩 4년간 작품에 몰두하였다. 강한 재료의 물감이 미켈란젤로의 눈에 오랜 시간 들어가 나중에 실명이 되었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잠들어 다리가 부어 장화를 칼로 찢어야만 했다. 무리하게 장화를 빼면 살점까지 떨어져 나갔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눈시울이 먹먹해졌다.

미켈란젤로는 1564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도 <론다니니의 피에타>제작에 몰두하였다. 만년에는 병상에서 일어나 작업을 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성 베드로 성당으로 달려가다 쓰러져 하인의 등에 업혀오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서 당시 장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 초인적인 열정과 집념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의 평전을 쓴 로맹 롤랑은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또는 천재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고 했다. 미켈란젤로의 <다윗> <피에타>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같은 작품을 보면 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함 앞에서 경탄보다 강한 시기와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피에타는 1547년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중단과 계속을 반복하다 숨을 거두었다. 후세들은 미완성이라고 평가하지만 미완성이 아닌 것 같았다. 조각 작업은 “필요한 부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는 명언처럼 덜 깎아 낸 돌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조각들은 인간과 숙명적인 관계를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예수와 성모가 한 인물처럼 조각되어 신과 인간, 여성과 남성,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것 같아 또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 3월 6일 피렌체의 근교 카센티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읍의 행정관이었고, 어머니는 그가 6살 때 세상을 떠나 어느 석공의 아내에게 맡겨졌다. 아버지는 영특한 아들에게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울 ‘학업’에 집중하기를 원했지만, 미켈란젤로는 학교에서 오직 데생만을 했다. 당시 분위기로 집안에서 예술가가 태어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아버지는 매를 때려가며 훈육을 했지만 아들의 외통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천재는 일찍 발견되어 13세 때 피렌체의 뛰어난 화가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제자로서 도제수업을 받게 되는 데, 스승도 그의 재능을 질투할 정도였다.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90년 생애는 번민과 절망의 세월이었지만, 위대한 작품을 통하여 남은 우리는 환희와 희망 그리고 인류애를 보고 감동을 한다. 세월 앞에서 인간의 목숨은 부질없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미켈란젤로 언덕에 펼쳐진 끝없는 야경을 바라보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숙소로 옮겼다. 잠을 청했지만 5년 전 악몽이 되살아났다. 미칠 것만 같았다. 단숨에 노트북을 켜고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1부와 2부를 연이어 들이 마신 후에야 깊은 숙면에 빠져 들 수 있었다. 아! 피렌체여! 영원하라.


한대규 한전 강남지사 부장(전 인재개발원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