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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식약처의 판단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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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식약처의 판단 실수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
우리나라 소비자 감시단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큼 최정상 수준이다. 유통업자들이 중국에서 저품질의 식재료를 수입해 올 때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원산지 표시제를 강력히 요구했다. 지금은 보편화되어 있어 모든 식품과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식품에 원산지 표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과장이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자 미량의 식품첨가물까지도 일일이 포장지에 표기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알레르기 문제가 확대되면서 공정 중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식품을 다룬 공정에서 제조했는지 표시하도록 요구하여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알레르기 물질이 수백 종이다 보니 앞으로 계속 추가될 때마다 포장지에 모두 기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GMO 품종 여부를 표기하는 문제도 뒤따를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재포장하는 사례가 발표되면서 유통기한에 대한 표기가 강조되었고 앞으로는 상미 기한이나 판매 가능 기한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소개될 수 있기에 이 많은 정보를 포장지에 다 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혹여 이런 정보를 다 기입한다손 치더라도 도저히 읽어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모든 제품에 대해 면적과 관계없이 그래프 형태와 QR 코드 형태 중 선택하여 표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몇 달도 지나지 않아 QR 코드는 허용하지 않고 그래프 형태로 표시하도록 안을 마련하여 시행하려 하고 있다. 식품산업계에 엄청난 혼동을 줄 것으로 보인다. QR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많은 정보를 다루는 문제와 더불어 수시로 포장재를 바꾸어야 하는 비용과 번거로움을 최소화하자는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4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므로 QR 제도는 4차 산업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도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을 포기하고 그래프 형식으로 돌아가려는 자세는 안타깝게도 4차 산업혁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 표시방법 변경에 따른 동판 제조 비용 1억9000만원을 보상해 주겠다는 데 산업체가 받아 들어야 하는 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여겨지며 결국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격을 통제한다면 품질의 저하로 연결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식약처가 정책을 잘못 판단하고 수행하였으니 보상으로 이를 무마하려는데, 국민의 혈세를 이런 식으로 보상을 해 주어서는 안 되는 문제이고 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나 앞으로 수많은 표시사항에 대하여 소비자들이 알기 쉽게 해달라고 요청을 한다면 모든 사항을 이런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트륨 저감화 같은 영양정책은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민간단체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트륨은 꼭 먹어서는 안 되는 식품원료가 아니라 우리 몸에 꼭 필요하며 맛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자이다. 과량 섭취가 문제인 만큼 이는 소비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된다. 차라리 백해무익한 담배를 보다 더 강력한 규제로 다스리는 것이 국민 건강을 위해서 식약처가 나서야 하는 일이다. 핀란드가 왜 30여 년에 걸쳐서 국민을 계몽하고 저염 식품의 맛에 대해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프로스포츠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해봐”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 좋다. 그러나 이렇게 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라고 이해를 시키고 선수 스스로 판단하여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우리 국민의 인식도 과거처럼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고 여겨지며 식약처는 법이나 규정을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수시로 고쳐서 ‘이렇게 따라와요’ 하는 갑질의 자세에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본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전 한국식품과학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