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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겜문학] 3분 한국게임 만들기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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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겜문학] 3분 한국게임 만들기 레시피

'제논의 역설'을 실현하는 한국게임

그래픽=노혜림 디자이너이미지 확대보기
그래픽=노혜림 디자이너
[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자, 오늘은 한국 게임 레시피를 알려드릴게요. 우선 8등신 여자캐릭터에, 수염난 탱커 아저씨 하나와 미소년 검사하나를 넣어요. ‘개성’을 강조하고 싶다면 조그마한 소인족 캐릭터와 덩치가 어마어마한 거인 캐릭터도 하나 넣어 주세요. 물론 세계관은 서양 중세 판타지입니다. 이정도야 기본이잖아요. 거기에 오크, 드워크, 용 등 몬스터를 뿌려줍니다. 아, 물론 저는 시간 관계상 미리 준비된 PC버전으로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볼 거에요. (냉장고에서 ‘PC대작’이란 이름이 붙은 IP를 하나 꺼낸다) 누구나 집에 유명 IP(지적재산권) 하나쯤은 있잖아요.

사냥 콘텐츠는 바벨탑처럼 높이 높이 대국적으로 세우세요.
사냥 콘텐츠는 바벨탑처럼 높이 높이 대국적으로 세우세요.

이제 사냥 콘텐츠를 준비해봅시다. 탑 위를 무한정 올라가는, 이름만 들어도 괴로운 ‘108계단’ 아이템 획득 콘텐츠 하나, 캐릭터 성장을 위해 꾸역꾸역 해야 되는 ‘레이드 던전’ 하나, 박진감은 하나도 없는 PVP(이용자간 대결)를 넣으면, 어머 벌써 그럴싸한 한국게임 냄새가 나죠? 여기에 접속 강박을 만드는 ‘요일 던전’과 캐릭터 가짓수를 풍성하게 하는 ‘속성’을 토핑합니다. 자 마지막으로 쉐프의 킥! 3살배기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자동사냥 기능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만 하면 깨지는 퀘스트들, 인게임이랑은 전혀 다른 멋있는 시네마틱 동영상을 가니쉬로 접시에 올려줍니다. 이러면 게임이 아니라 동영상 만들기 강좌 아니냐구요? 요즘 대세가 이런 걸 어쩌겠어요.

베지터가 드디어 초사이언으로 각성했어! 이말인 즉슨 손오공이 초사이언3 경지에 다다랐다는 소리다. 한국게임에서도 '초' 접두사는 꽤 잘팔리는 마케팅 용어로 사용된다.이미지 확대보기
"베지터가 드디어 초사이언으로 각성했어!" 이말인 즉슨 손오공이 초사이언3 경지에 다다랐다는 소리다. 한국게임에서도 '초' 접두사는 꽤 잘팔리는 마케팅 용어로 사용된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하세요? 맞아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게임 내 현금 상점이 없어서야 한국게임이라고 부르기 민망하겠죠. 우선 밑작업을 해봅시다. 초월, 강화, 각성, EX, 진화, 환생, 승급 등 색색의 성장 시스템을 가지런히 놓아줍니다. 이때 각각의 재료에 접두사로 ‘초(超)’ 또는 ‘진(眞)’ 자를 붙여주면 유저들의 플레이 시간을 두 배로 뻥튀기 할 수 있어요. 밑줄 쫙쫙 그어 놓으시구요. 이젠 아이템을 설계할 차례입니다. 아이템 착용 부위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에요. 머리, 배, 가슴, 다리, 양팔, 양귀, 등 신체부위를 세분하세요. 착용 아이템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강화석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거든요. 조만간 손가락도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으로 나눠서 아이템을 구성할까 생각중이에요. 머리도 이마, 뒤통수, 정수리로 나누면 굉장할 거에요.

유저들의 반발이 무섭다면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는 절대 진리가 없다는 것 뿐이라는 옛 선현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도 좋다. 이미지 확대보기
유저들의 반발이 무섭다면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는 절대 진리가 없다는 것 뿐"이라는 옛 선현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도 좋다.

드디어 기다리던 강화 시간이에요. 최대치가 +9강화이던 시대는 지났어요. 요즘엔 +30강화가 대세랍니다. 여기에 다양한 속성 강화 옵션을 붙여주면 금상첨화에요. 음~ 거의 완성된 거 같은데요. 어디 맛을 좀 보죠. 음, 뭔가 밍밍한데요. 아! 확률이 빠졌네요. 위에 나온 모든 재료들에 확률 소스를 넣고 '쉐킷쉐킷' 섞어줍시다. 요즘 과학계에서도 불확정성이 핵심인 ‘양자물리학’이 대세라고 하던데요. 역시 게임은 ‘트렌디’해야 제 맛이죠. 실제 게임 판매할 때도 이렇게 홍보하는 게 어떨까요. “이 게임은 50% 확률로 재미있을 수도, 재미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때요 새콤탈콤시큼한 슈뢰딩거의 한국게임이 완성됐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질문을 좀 받아볼게요. 어디 보자, 아이디 ‘믿거국’님이 올려주신 질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만들어서 오픈빨로 수익이 좀 났는데 시간이 갈수록 유저수도 줄고 매출도 잘 안 나오네요. 고민입니다.” 고민해결 들어갑니다. 이럴 땐 ‘허들 설계’에 실패하신 거랍니다. 게임의 난이도를 지속적으로 유저들이 눈치 못 채게 조금씩 올린 다음에 아이템을 판매하셨어야죠.

‘제논의 역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내용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비슷해요. 거북이와, 그보다 1000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아킬레스가 경주를 하는데 거북이가 많이 느리니까 아킬레스보다 1000미터 앞에서 출발합니다.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출발한 위치까지 오면, 그 동안 거북이는 1미터 가죠. 아킬레스가 또 1미터를 가면 거북이는 또 1/1000미터 전진했을 겁니다. 또 아킬레스가 1/1000미터를 따라잡으면 그 동안 거북이는 1/1000000미터를 나아갑니다. 결과적으로 아킬레스는 무지하게 빠르지만 평생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21세기 게임회화 중 최대걸작으로 뽑히는 모 제작자의 회화. 개발자의 고뇌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초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과감한 터치와 직선을 강조한 화면 구성은 네덜란드 출신의 미너멀리즘 대가 몬드리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다 거짓말이다.이미지 확대보기
21세기 게임회화 중 최대걸작으로 뽑히는 모 제작자의 회화. 개발자의 고뇌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초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과감한 터치와 직선을 강조한 화면 구성은 네덜란드 출신의 미너멀리즘 대가 몬드리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다 거짓말이다.
궤변이라구요? 맞아요. 근데 언뜻 반박하기가 쉽지 않아요. 수학이 아니라 일상의 감을 이용해서 풀려고 들면 결코 풀어낼 수 없는 역설이랍니다. 한국 게임도 마찬가지에요. 유저들에게 강해지고 있다는 감각, 즉 ‘환상’을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신던전을 만들고 고등급의 아이템을 찍어내세요. 그럼 게임 최강자를 노리는 ‘헤비 과금러’들이 눈 질끈 감고 질러 줄 거에요. 유저들은 결코 눈치 채지 못할 거 에요. 현질을 해서 캐릭터의 힘, 체력, 마력은 강해졌지만 그만큼 게임의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걸. 그리고 다른 사람도 똑같이 현질을 한 탓에 상대적인 강함은 제자리라는 걸. 오로지 낙오되는 건 현질을 안 하는 ‘태만한’ 유저들 뿐 이랍니다. 돈을 안쓰면 위험하다는 강박관념을 끊임없이 주입해줘야 해요. 한국게임에서는 아킬레스(유저)가 거북이(최강)을 따라잡을 수 없어요. 유저가 접근해갈수록 최강의 자리도 딱 그만큼 뒷걸음질 치거든요. 게임은 ‘환상’을 파는 종합예술이니까요.

자,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질문이 있으면 KMMORPG@3N.COM 또는 홈페이지 hajimakwawawa.com 시청자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물론 답변은 메크로로 나갑니다. (찡긋)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