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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경찰 '공조대응' 묵살한 인천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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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경찰 '공조대응' 묵살한 인천소방본부

뉴미디어부 라영철 부장
뉴미디어부 라영철 부장
“119 업무가 아니에요. 고라니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구청에서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안전 따지면, 음식도 해당될 수도 있고 그럼 그런 것도 119가 해야 합니까?”

이는 교통사고를 우려해 차로에 쓰러져 있는 고라니를 처리해 달라는 민원인의 요청에 인천소방본부 소방대원이 발언한 내용이다.
최근 국정감사 기간에 소방당국이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한 경찰의 현장 공조 대응 요청을 무시하는 일이 발생했다.

소방당국과 경찰의 신속한 공조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해당 소방대원은 소방기본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해 소방당국의 현장 대응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다.

민원인과 경찰,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5일 인천 영종도의 편도 2차선 도로에 쓰러진 고라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방당국이 경찰의 공조 대응 요청을 두 차례나 뭉갰다.

최초 신고자인 민원인은 당시 안개 낀 어두운 새벽에 운전하다가 도로 위에 쓰러진 고라니를 발견하고 급히 차선을 변경했다. 뒤따르는 차량이 있었으나 다행히 사고는 면했다.

놀란 민원인은 사고 위험을 경찰에 알렸고, 경찰은 고라니를 처리하기 위해 인천소방본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출동하지 않고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어 고라니 생사를 물었다.
이어 “위험한 사항이면 소방서가, 죽었으면 관할 구청이 처리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민원인은 다시 구청에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알렸고, 이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구청 직원은 고라니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소방본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방당국은 출동하지 않았다. 이유는 ‘경찰과 구청도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소방당국에 공동대응 요청을 했을까?

더욱 황당했던 것은 시민의 신고를 받은 관련 기관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문제에 일일이 민원인이 직접 나서야 했다는 점이다.

소방본부가 번번이 경찰의 협조 요청을 묵살하자 경찰은 되레 민원인에게 “경찰이 출동 요청을 해도 소방서에서 출동을 안 한다고 하니 민원인이 직접 요청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소방당국이 민원인 신고를 받고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의 현장 상황 판단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당시 소방인력이 출동하지 못할 만큼 위급한 상황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최초 공조 요청을 한지 약 40분 만에 소방대가 현장에 출동했을 때는 이미 관할 구청에서 고라니를 처리한 이후였다. 결과적으로 소방당국이 말을 바꾸면서까지 어떻게든 출동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린 거나 다름없다.

우리 소방당국은 경찰보다 민원인과 협의해 현장 대응을 한단 말인가?

만약 소방당국이 경찰과 구청의 공조 대응에 앞서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민원인 입막음을 하려는 행위였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방기본법(제16조의 3)에는 "소방청장·소방본부장 또는 소방서장은 신고가 접수된 생활 안전 및 위험 제거 활동(화재, 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 해당하는 것은 제외한다)에 대응하기 위하여 소방대를 출동시켜 생활 안전활동을 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위험 제거 및 구출 활동과 방치하면 급박해질 우려가 있는 위험 예방 활동'도 포함돼 있다.

이에 인천소방본부 감찰팀은 “해당 직원이 소방기본법 제16조3의 5항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미흡하게 대응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7월에도 인천에서는 반지하 주택에 살던 90대 노인이 소방 직원의 실수로 119구급차가 최초 신고 전화를 받은 지 33분이 지나서야 출동하는 바람에 폭우로 불어난 빗물이 가득 찬 방안에서 숨지는 사고가 났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졌고, 위급상황 시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기관 또는 부서 간 공조 대응도 강조되고 있다.

최근 중학생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이른바 ‘어금니 아빠’ 사건에서도 경찰의 초동수사와 부서 간 공조 대응 부실이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곧 강조해 온 ‘나라다운 나라’의 첫걸음은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을 때부터다.


라영철 기자 lycl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