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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실종'된 한국 이끌 스승‧성직자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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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실종'된 한국 이끌 스승‧성직자가 안 보인다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 마음산책(125회)] 개인과 사회의 양심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에덴동산에서 살았다. 에덴동산에는 ‘모든 좋은’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곳이었다. 동산의 중앙에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는 나무도 있었다. 하나님은 남자 아담에게 모든 열매는 다 먹어도 좋은데 선악과(善惡果) 만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이 명령을 어기고 결국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다. 그 결과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껴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수고하고 해산해야 먹고 자식을 기를 수 있도록 벌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실낙원(失樂園)’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전문종교인은 많지만 성직자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본받고 따라야할 사회의 양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우리 사회는 전문종교인은 많지만 성직자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본받고 따라야할 사회의 양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요즘 도덕과 윤리가 허물어지고


인간으로서 못할 일 너무 빈발


종교인들까지도 비도덕적 행동


물론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이 글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내용에는 곱씹어볼 중요한 내용이 상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먼저 수많은 생물들 중에 유독 인간만이 벌거벗으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들은 비록 벌거벗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갓난애도 처음에는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당연히 그들에게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도 없다. 그저 천진난만하게 웃고 까불고 순수하게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자라나면서 그들도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그들도 상징적으로 선악과를 따먹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영원히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그리고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상태에서 벌거벗고 즐겁게 동산에서 뛰어놀던 시절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물론 어린이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결과이다. 모든 교육의 핵심가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맹자께서도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설파하시면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羞惡之心 義之端也),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是非之心 智之端也)”라고 가르치셨다.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양심(良心)’이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행동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의 규범이 있다. 갓난애는 스스로 행동의 규범을 익히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할 능력이 아직까지 없다. 그래서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그것을 알려준다. 갓난애는 외부의 가르침에 따라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동시에 어떤 행동들은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왜 하면 되고 또 왜 하면 안 되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 행동의 결과에 따라 구별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과 경험을 되풀이 하면서 어린이들은 외부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게 된다. 소위 선악의 기준을 ‘내재화(內在化)’한다. 이처럼 내재화된 도덕이나 윤리, 그리고 사회적 규범을 ‘양심’이라고 부른다.

사람만이 양심을 가지고 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이 인간이 인간인 것을 나타내주는 제일 중요한 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르고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동물에 빗대서 욕을 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은 “사람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양심은 한 개인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도달해야할 목표를 정할 수 있는 등대와 같은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 양심이 없다면 사람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단시 생존과 종족 보존만을 위해 본능에 이끌려 살다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국민이 본받고 따라야 할


'사회의 양심' 찾아보기 힘들어


생존만 위한 세태 아닌지 우려


양심은 크게 두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선한 일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요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만 한다. 이것은 선한 일이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도리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양심의 이런 요인을 ‘자아이상(自我理想)’이라고 부른다.

양심의 또다른 요인은 악한 일은 하지 말아야하는 부분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소위 악한 일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둑질은 나쁜 일이기 때문에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할 경우, 비록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할 지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하면 안 되는 것을 알게 해주는 부분을 좁은 의미의 ‘양심’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늘 양심의 길을 묻게 한 시인 윤동주.
우리에게 늘 양심의 길을 묻게 한 시인 윤동주.

우리가 좋아하고 애송하는 윤동주님의 <서시>는 양심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서시>의 처음 연은 “죽는 날까지/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로 시작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좁은 의미의 ‘양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되고 싶고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을 알려주는 양심의 소리이다.

다음 연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이다. 이 부분은 ‘해야 되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양심의 ‘자아이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양심은 해야만 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윤동주님을 존경하고 이 시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시가 자주 일상생활 속에서 양심의 소리를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삼 한줄기 빛처럼 우리 마음에는 양심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 가야겠다.” 다짐하는 순수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도 양심의 기능을 담당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 제도를 담당하는 것이 종교와 교육이다. 종교는 한 개인과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그리고 교육은 각 개인이 스스로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내재화하도록 도움을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중요한 일을 ‘성직(聖職)’이라고 규정하고, 이 중요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종교인과 교육자를 ‘성직자’라고 부르고 사회가 존경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도덕과 윤리가 허물어지고, 인간으로써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쉽고 염려되는 것은 소위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양심을 대표하고 양심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한 개인에게 양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사회가 존경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사회의 사표(師表)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에 맞추어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야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없다’라거나 ‘전문종교인은 많지만 성직자는 없다’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본받고 따라야할 사회의 양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나 백범 김구 선생님과 같은 우러러볼 사회적 스승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사회는 방향을 잃어가는 사회이다. 청담스님과 성철스님, 한경직목사님과 김수환추기경님과 같은 존경받는 종교인을 계속 배출해내지 못하는 사회는 등대를 잃고 칠흑 같은 밤바다를 표류하는 사회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