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신기자의 겜문학] 닌텐도 스위치 열풍 속 알라딘보이를 떠올린다

공유
3

[신기자의 겜문학] 닌텐도 스위치 열풍 속 알라딘보이를 떠올린다

[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3일 한국에서 닌텐도 스위치가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이 신통방통한 기기는 TV로, 또 들고 다니면서 게임이 가능한 ‘하이브리드’형 콘솔 게임기다. 지난 3월 발매 이후 일본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키며 장기 흥행중이다. Wii U 실패이후 주춤했던 닌텐도는 한방에 가세를 일으켰다. 닌텐도 주가는 올해만 75% 상승했다.

한국에서야 콘솔게임이 비주류로 내려 앉은 지 오래라지만 북미, 유럽 등은 아직까지 콘솔 게임의 지배력이 막강하다. 마이크로소프는 오는 7일 차세대 콘솔게임기 ‘엑스 박스 원’을 전 세계에 발매한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가 발매될 때마다 긴 줄이 들어 선다.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콘솔게임 시장은 규모는 353억달러(39조3000억)에 이를 전망이다. 글로벌 모바일게임 시장 규모 335억달러(37조3000억)에 못지않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콘솔 게임기는 없을까. 사실 있었다. 그것도 꽤나 많이. 멀리는 대우 재믹스, 금성(LG) 3DO 얼라이브, 대우 PC셔틀, 해태 바이스타가 있었고 최근에는 카누, 게임파크 홀딩스 GPX2 등이 출시됐다.

80년대 후반을 주름잡은 대우전자의 콘솔 게임 기기 '재믹스' 시리즈. 재믹스 PC셔틀은 판매가 18만원으로 당시 대기업 초봉 월급이 45~60만원 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초고가 게임기였다. 초기 재믹스 시리즈는 컴퓨터 부품을 콘솔기기에 부착한,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콘솔 게임기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초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꽤나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이미지 확대보기
80년대 후반을 주름잡은 대우전자의 콘솔 게임 기기 '재믹스' 시리즈. 재믹스 PC셔틀은 판매가 18만원으로 당시 대기업 초봉 월급이 45~60만원 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초고가 게임기였다. 초기 재믹스 시리즈는 컴퓨터 부품을 콘솔기기에 부착한,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콘솔 게임기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초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꽤나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전자도 80년대 후반 게임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맞다 그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를 수입해 ‘슈퍼 알라딘 보이’란 이름으로 국내 정식 발매했다. 삼성전자는 세가의 콘솔 기기 세턴을 ‘삼성세턴’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으며 90년대 중반까지 게임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한다.

여기서 질문. 과연 국내 최초의 한글화 게임은 무엇일까. 바로 알라딘 보이 내장 게임인 ‘알렉스 키드(원제: 알렉스 키드 인 미라클 월드)’다.

한국에서 지난 1989년 출시된 '알렉스키드'. 최초의 한글화 작품이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에서 지난 1989년 출시된 '알렉스키드'. 최초의 한글화 작품이다.

알렉스 키드는 세가에서 닌텐도의 마리오에 대항하기 위해 내놓은 게임이다. 지금이야 소닉에 밀려 만년 2인자 신세지만. 당시로서는 꽤나 고퀄리티의 화질을 갖춘 횡스크롤 액션게임이었다. 오토바이 등 탈것을 이용하거나 바다 속 액션이 등장하는 등 ‘슈퍼마리오 브라더스2’와 상당히 흡사한 게임성을 보여줬다.

일본풍을 싹 뺀 '화랑의 검'. 삼성전자가 한국 게임사에 남긴 족적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이미지 확대보기
일본풍을 싹 뺀 '화랑의 검'. 삼성전자가 한국 게임사에 남긴 족적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
삼성전자는 이후에도 알렉스키드 후속작인 천공마성, 환타지스타, 신창세기 라그나센티, 라이트크루세이더 등 게임을 한글화해 게임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화랑의 검은 한글화를 넘어 ‘현지화’를 최초로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랑의 검은 원제는 <켄세이덴(剣聖伝)>으로 원래 유랑 무사(武士)가 일본 전역을 이동하며 각지의 요괴를 무찔러 나라를 구한다는 줄거리의 액션 게임이다. 당시 일본풍의 게임이 수입되기 어려웠던 한국 사정을 고려해 삼성전자는 그래픽과 텍스트를 상당 부분 변경해 화랑의 검이란 이름으로 출시한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삼성전자는 게임기 사업을 사실상 접는다. 대신 온라인으로 축을 옮겨 온라인 액션게임 ‘던전앤파이터’와 MMORPG ‘붉은보석’ 등의 퍼블리싱 사업을 벌인다. 지난 2014년 전 NHN이사 김규호를 전무로 발탁해 게임빌 등과 모바일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삼성의 게임 역사는 여기까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시 지식경제부 직원들과 함께 한 식사에서 '우리도 닌텐도 게임기 같은 걸 개발할 수 없겠느냐'고 말하자 누리꾼들이 만든 가상의 '명텐도(이명박+닌텐도). GP2X Wiz와는 관련 없는 제품이다.이미지 확대보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시 지식경제부 직원들과 함께 한 식사에서 '우리도 닌텐도 게임기 같은 걸 개발할 수 없겠느냐'고 말하자 누리꾼들이 만든 가상의 '명텐도(이명박+닌텐도). GP2X Wiz와는 관련 없는 제품이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이 게임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중도 포기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큰 문제로는 킬러 콘텐츠의 부재가 꼽힌다. 닌텐도 스위치의 흥행 배경에는 ‘젤다의 전설’, ‘마리오’ 등 유명 IP(지적재산권) 게임들이 버티고 있다. 콘솔기기는 게임을 작동하게 해주는 플랫폼에 불과할 뿐 실제 유저들이 원하는 건 게임기를 통해 얼마나 다양하고 재밌는 게임이 돌아가느냐다. 이 점은 일명 명텐도라고 불리는 GP2X Wiz에서도 들어났다. 이 휴대용 게임기기는 출시 초기 당시 소니의 PSP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성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게임 타이틀 부재로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2000년대 게임타이틀 불법다운로드가 만연한 탓에 한국 게임 흐름이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월 과금제와 부분 유료화 모델이 주가 되는 온라인 게임은 게임 복제로 인한 수익 저하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에 유난히 가혹했던 정부의 규제도 일정정도 콘솔 게임 분야 축소에 영향을 끼쳤다.

한국이 게임강국이라지만 콘솔게임 없이는 반쪽짜리 강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진화 생물학에서는 ‘다양성’을 종족 보존의 열쇳말로 받아들인다. 인류가 다양한 DNA를 갖출수록 질병 등 재해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7년, 한국의 게임산업은 모바일 일변도다. 갑작스럽게 모바일에서 콘솔로 게임산업의 축이 크게 옮겨간다면 한국 게임 생태계도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월가의 초 엘리트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치부했다. 절대란 건 절대 없다. 사진=YES24
월가의 초 엘리트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치부했다. 절대란 건 절대 없다. 사진=YES24

월가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켜 ‘블랙 스완(검은 백조)’라고 명명했다. 실생활에서 검은 백조를 볼 수 없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일반적 기대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관측값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 극심한 충격을 동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블랙 스완은 현실이 됐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강조하는 것은 고정관념과는 다른 상상력이다. 지금의 BM(비즈니스 모델)이 언제까지나 유효하라는 법은 없다. 모바일 MMORPG 열풍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들고 말 것이다.

넥슨, 블루홀, 넥스트플로어 등 게임회사가 자사 게임을 콘솔용으로 이식‧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단기적으로 대박을 노리기는 쉽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게임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용기있는 시도다. 한국산 콘솔 게임기에서 한국 게임을 즐기는 건 꽤나 많은 게임팬들의 꿈이다. 닌텐도 콘솔기기 출시와 '젤다의 전설' 한글화를 기다리며 손가락만 빨고 있노라면 조금은 서글퍼진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