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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정은혜 안무의 '대비'…지조와 시공간 변주한 한국창작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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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정은혜 안무의 '대비'…지조와 시공간 변주한 한국창작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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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안무의 '대비'
마른하늘이 먹빛 빌딩 사이로 깊어가는 가을을 끌어 올릴 때 선홍의 열정을 찾아 정제된 춤이 햇살 좋은 도시의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과 대비된다. 우직한 전통의 계승정신과 현대의 창작 모습의 자연스런 대비는 투명한 바람 속 풍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전통과 창작의 두 가지 요소와 사제지간의 두 명의 무용수가 데칼코마니처럼 만나 복사꽃 정취를 기억해 낸 『대비』는 같은 것의 다름을 비교하며 보는 춤이다.

제3회 세종국제무용제를 빛낸 정은혜 안무의 『대비』는 가을에 감상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스승 정은혜(충남대 무용과 교수), 제자 이금용(충남대 무용과 1회 졸업생)의 이인무는 심도 깊은 안무력으로 깔끔한 대비구조가 함의되어 나타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제자 이상적(李尙迪)과 대비되는 122년 전 수묵화 세한도(歲寒圖)를 떠올린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고결한 지조가 그림의 정신이다.
소나무와 송이간의 상생관계에서 느끼는 시공간적 구조변화를 춤으로 환치하면 『대비』는 간결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춤 구성 요소들이 눈에 띈다. 우선 음악의 파스텔화이다. 전통학춤 음악의 느림은 이생강의 대금과 단소연주로 새로 입히고, 성금연의 가야금 산조의 중모리와 중중모리로 빠름의 완급을 조절한다. 오래된 전통의 학춤 영상은 은은한 달빛으로 부드러운 흡인력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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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안무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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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소재와 구도, 과감한 생략과 절제된 움직임은 들뜸과 부풀림의 인위적이고 도식적 춤의 매너리즘을 경계한다. 안무가의 농축된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무기(舞技)는 정신과 춤의 정묘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무대의 상수(上手) 뒤쪽의 흐릿한 탑 조명에서 느리게 분화되는 한 쌍은 분리와 합의 『대비』를 예고한다.

달 사이로 구름이 스쳐가면서 세월을 묘사해내는 비익조의 울음, 떨어질 수 없는 몸이다. 작은 달이 점점 커오면서 녹색 상의・검정 치마가 영상 속의 학춤과 땋아 올린 머리가 현대를 아우르며 도포한 사위와 디딤은 경쾌하게 진행된다. 달이 차오르면 무게중심은 스승의 앞쪽으로 옮겨지고, 가야금 산조에 맞추어 우리 춤의 정묘한 춤 미학에 몰입하게 만든다.

『대비』는 우리 춤 향방의 이상적인 답안 같다. 춤은 춤도량(道場)의 모방과 전이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춤의 순수와 확장이 공존하는, 순응의 바람직한 형식을 보인다. 이 춤은 쏠림을 차단하고 의미있는 균형감을 견지한다. 신명이 오르면서 내는 ‘쉬이’하는 구음이 달라붙고 완벽한 내공의 호흡이 빚은 안정감 있는 조형은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아름다운 시절의 희망과 열정을 섞어 갈무리한 『대비』는 앞서간 자들이 운명으로 여겼던 춤의 자취를 유추하면서 맞이하는 춤 현실, 현의 울림은 춤 정신을 일깨우는 학춤을 부른다. 하수(下手)로 옮겨간 춤은 추출된 정신의 결정체로 남아 또 다시 비익조의 울음을 동반하면서 춤은 종료되며 달 아래 한바탕 우리 춤의 만개를 맛보았던 그들은 또 다른 도약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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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안무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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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안무의 '대비'

『대비』는 전통학춤의 이미지와 창작학춤을 같은 무대에서 보여주면서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며 현대가 전통을 보완하고, 전통을 보듬는 동행을 전제로 한다. 전통춤이 창작춤과 소통하기 위하여 완만한 속도감을 보이고 있고, 미소가 들어있는 창작무는 전통의 가치를 소지한 ‘느림의 미학’을 일깨운다. 안무가의 무한 동력과 분출의 일면을 보여준 작품은 성숙의 퇴적층 일부를 탐지한 것이어서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이 일게 만든다.

정은혜, 창의력이 빛나는 안무가이다. 그녀는 전통춤의 서사구조를 현대적 몸 시(詩)로 써내면서 시공간을 확장하고 전통과 창작과의 경계를 허물며 위트 있는 세밀한 디테일을 살려 한국 춤의 미적 가치를 고양시키고 있다. 그녀의 『대비』는 세종국제무용제의 취지에 부합되는 빛나는 한 편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