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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 사회 조선, 건물도 신분 따라 격과 명칭 달리해…'왕'은 하늘과 백성과 땅 관장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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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 사회 조선, 건물도 신분 따라 격과 명칭 달리해…'왕'은 하늘과 백성과 땅 관장 의미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사극에서 자주 듣는 말

사극 대조영.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은 건물도 신분에 따라 격과 명칭을 달리했다.이미지 확대보기
사극 대조영.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은 건물도 신분에 따라 격과 명칭을 달리했다.
사극을 보다보면 궁궐에서 쓰는 말들이 많아 다소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임금을 나타내는 호칭만 해도 왕·전하·상감·짐 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런 호칭들은 고조선에서 조선왕조에 이르는 동안 추가되고 혼용되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호칭은 ‘임금’이다. 임금은 순 우리말로, 하늘을 뜻하는 ‘니마’와 땅을 의미하는 ‘고마’가 합쳐진 것으로,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오늘날 존칭으로 쓰는 ‘~님’은 ‘니마’에서 변형된 것이고, ‘고맙습니다.’의 원류는 ‘고마’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중국의 한자문명이 도입되고 제정도 분리되던 시기부터 정치의 수장을 ‘왕(王)’으로 불렀다. ‘王’은 삼(三)자 중심을 세로로 그은 형태로, 하늘과 땅과 백성 셋을 관장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상감(上監)’은 왕의 극존칭으로, 의역하면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임금’이 된다. “짐이 부덕해서~” 할 때의 ‘짐(朕)’은 왕 자신이 신하에게 사용하는 1인칭의 ‘나’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는 건물도 신분에 따라 격과 명칭을 달리했다. 근정전, 사정전 등 건물이름 끝에 ‘전(殿)’은 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신분의 집에만 붙였고, 그 밑으로 당(堂)· 합 (閤)· 각(閣)· 제(齊)· 헌(軒)· 루(樓)· 정(亭) 등의 서열을 매겨놓았다. 따라서 ‘전하(殿下)’는 전(殿)에서 머무는 사람 즉 왕을 가리키며, 당상관 급은 ‘당하(堂下)’, 대원군은 ‘합하(閤下)’ 등으로 차등하여 불렀다. 유사한 맥락으로 중전· 후궁· 동궁은 본래 건물의 위치를 나타내지만, 동시에 그 건물에 사는 신분의 명칭이 되어 각각 왕비, 왕의 소실, 세자를 달리 부른 말이 된 것이다. 또한 5품 이상의 높은 신분 뒤에 따라붙는 ‘마마’는 마리, 마노라, 마눌, 마니 등 ‘지극히 높다’의 옛말에서 파생된 존칭 어미이다. 강화도에 가면 마니산이 있는데, 일명 마리산 이라고도 부르며, 가장 높은 산임을 알리는 옛말이다.

한편 “조정들은 들라”에서 ‘조정(朝庭)’은 왕의 집무실 앞 넓은 공터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왕의 훈시가 있을 때 신하들이 조정에 도열하기 때문에, 조정을 신하의 다른 말로 쓰곤 했다.

사극 선덕여왕. 왕은 하늘과 백성과 땅 셋을 관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극 선덕여왕. 왕은 하늘과 백성과 땅 셋을 관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하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대사도 자주 들리는데, 여기서 ‘윤허(允許)’는 무언가의 허락을 말한다. 신하들이 공문서를 올리면 왕은 그를 읽어 보고 합당할 때 공문 하단에 한자 ‘윤(允)’을, 다시 검토를 바랄 때 ‘비(非)’자를 적었다. 신하가 왕에게 간절히 호소할 때는 ‘통촉(洞燭)’이란 말도 사용하는데,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해 깊이 헤아려 살펴달라는 뜻이다. 비슷한 단어인 ‘황송(惶悚)’은 분에 넘쳐 매우 고맙고 한편으로 송구하다는 의미이며, ‘황공(惶恐)’이나 ‘황공무지(惶恐無地)’는 ‘지존(왕)을 대하니 두렵고 몸 둘 곳을 모르다.’로써, “황공무지하오나 이 말씀을 올려야 하겠습니다.”의 예문에 걸맞다.

“종사를 보존하소서!”에서 ‘종사(宗嗣)’란 종묘와 사직을 합친 단어인데, 종묘는 선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땅 신과 곡식 신을 모신 장소로, 한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따라서 종사를 보존한다는 것은 곧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살핀다는 의미가 된다.

왕을 ‘용(龍)’에 비유하여 용안-왕의 얼굴, 용좌-왕의 의자, 용포-왕의 옷, 용루-왕의 눈물, 용수-왕의 수염 등의 명칭도 종종 들린다. 우리 선조들은 용을 비· 구름· 강· 바다를 다스리는 영물이자, 사람의 먹거리를 관장하는 전설의 수호신으로 여겼다. 따라서 백성들은 살아있는 왕에게 최고의 권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용처럼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주길 염원 한 것이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