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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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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

◇고흐의 보드카와 스마트폰


교수들이 해외 세미나를 갔다. 여장을 풀자마자 한 방으로 모였고 면세점 양주를 그 자리에서 반병씩 비웠다. 시차를 이겨내려면 그래야 되는 거고 다음날 버스에서 자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아침마저 거르며 하루 종일 쓰린 속을 부여잡은 이들이 저녁에 다시 독한 양주를 들이켰다면 어찌 된 걸까? 대부분의 여행가이드는 설득의 달인이다. 교수들을 이끌던 가이드는 아를의 카페 앞에서 교수 일행을 모아놓고 말했다. “여기가 고흐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던 곳입니다. 이 술이 바로 그 보드카, 앱신입니다.” 당신이라면 그냥 지나치겠는가? 고흐가 귀를 자를 때 마신 술이라는데. 기선을 제압한 그는 고흐가 그의 유일한 후원자인 테오에게 전한 절절한 편지와 우정을 나누다 떠나버린 고갱의 이야기 몇 토막을 곁들일 것이다. 그가 팁을 챙긴 것은 당연하다. 술은 물론 역사와 추억까지 선사했으니까. 이때 앱신 보드카는 단지 술이 아니다. 고흐의 가난과 고독과 광기의 대변인이다. 폼 좀 잡으면서 말하면 술에 고흐라는 신화(Brand Myth)가 만들어져 고객의 머릿속에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래의 브랜드 마케팅의 관점이다. 다시 말해 마케팅이란 설득과 선택의 과정인데, 제품의 실체(Reality)가 아니라 고객의 인식(Perception)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품에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소비자의 골목을 지키고 있으면 곧 선택된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에서 이런 관점은 통용되지 않는다. 비교해 볼 데이터나 정보가 넘쳐 나는 세상이다. 스마트폰만 누르면 제품의 정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식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가 중요하다. 블루오션이니 퍼플카우니 하는 것들은 그래서 생긴 개념이다. 변해가는 트렌드의 선두에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있다. 당신의 스마트폰이 바로 그 결정체다.

◇화면 속에 갇힌 사람들

젊은층의 하루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얼마나 될까? 4.4시간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지하철, 길거리, 카페를 둘러보라. 우리네 삶이 스마트폰 안의 화면 속에 갇혀 버렸다. 헨리 젠킨스는 <컨버젼스 컬쳐>에서 “새로운 기술이 파생시키는 문화적 현상”에 주목하라고 했다. 모두들 게임과 소셜 미디어와 짧은 동영상에서 정보를 탐색하고 관계를 쌓고 휴식을 즐긴다. 어떤 것들인가?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내용들이 넘쳐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진정성의 시대라고 외칠 정도로. 더 나가볼까? 천재 바둑기사가 인공지능에 밀려 자존심을 구겼다. 인간이 만드는 거니까 인간만 잘하면 된다고? 과연 그럴까? 영화 ‘Her’는 인공 지능이 만든 허상의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고 버림받아 절망에 빠진 인간의 상황을 보여준다. 인간의 머리를 뛰어넘어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기술이 과연 불가능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기기가 융합된 디지털 혁명으로 생활과 문화가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이 안내할 미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올레길로 가는 사람들


올레길은 ‘좁은 골목’을 뜻하는데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770만 명이 걸었고 제주발전의 일등공신이 됐다. 제주에서 시작된 걷기 열풍은 지리산과 북한산을 거쳐 전국으로 길을 뚫어 나갔다. 실연이나 실직의 상심도 이곳에서 잊었고 인생을 다시 걸어 나갈 준비도 길 위였다. 몸으로 부딪쳐 얻은 위로이고 깨달음이었다. 뜬금없이 웬 올레길이냐고? 앞으로도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사실 디지털이 가져온 생활의 편리함만큼 정신적인 피곤함도 만만치 않다. 솔직히 물어보자. ‘좋아요’를 받기 위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아닌지. 소셜 미디어안의 자신이 정작 자신의 모습인지. 위선이나 자기 검열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중력의 분산, 익명성이 불러온 무책임한 댓글 문화, 과도한 몰입에 의한 운동성 약화, 순수 창의성의 퇴화 등의 문제도 있다. 따라서 디지털 세상이 열릴수록 인간이 가진 정신적 미덕을 잊지 않으려는 반작용은 당연하다. SNS가 연대와 결속의 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것이란 희망을 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리해보자. 디지털 기술은 인간성이 빛을 발하는 아날로그적 콘텐츠와 결합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날마다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은 그릇인 셈이고 인간적인 감수성으로 가득 찬 콘텐츠는 거기에 담길 맛있는 음식이다. 우리는 시대적 감각이 살아있는 그릇에 담길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휴머니즘의 왕국,코카콜라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Context(맥락), Content(콘텐츠), Contact(접촉)로 이루어진다. 제품의 셀링 포인트를 고객의 관점이 반영된 콘텐츠로 만들어 전달하는 것이다. 마케팅 왕국 코카콜라의 발빠른 변신을 보자. 코카콜라는 2011년 ‘Content Excellence’로 마케팅 방향성을 정하고 ‘나누다(Divide)’라는 주제로 7개의 테마를 선정해 글로벌 캠페인을 전개했다. 떨어져 있는 앙숙지간의 나라의 국민이나 스포츠 라이벌의 팬들이 자판기를 보고 상대에게 인사를 하면 자판기로 콜라를 나눠 주었다. 스마트 센싱(Smart Sensing)의 디지털 기술이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힌 것이다. 코카콜라 캡을 이국만리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코인으로 쓸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드론(Drone)을 건물 옥상에 띄워 코카콜라와 함께 감사의 편지를 전달해서 이국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마음을 나눴다. 열대의 나라에 하얀 눈을 선물하고 이국땅의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나누었다.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디지털 기술에 실어 나른 것이다. 유투브를 열어보라. 부지기수로 확인 될 것이다.이 캠페인은 세계 광고제에서 많은 상을 휩쓸었다.

◇디지털 세상의 마중물을 위하여


대한항공의 ‘내가 사랑한 유럽’ 캠페인도 모범적이다. 자신이 가고 싶은 여행지를 응모하게 만들어서 그 결과를 광고로 발표했다. 마케팅에 소비자들을 참여시켜 고객을 넓히고 새로운 여행 상품까지 개발했다. 광고가 비즈니스 플랫폼의 역할까지 한 것이다. 꿩도 잡고 알도 먹었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 고객을 놀게 하라. 다만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아라. 디지털 세상의 피곤함으로 물든 삭막한 세상일수록 인간의 이야기가 그리워질 것이다. <인간시대>의 따뜻한 관계, <응답하라>의 그리운 시절, <나는 자연인이다>의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오로라가 장관이라는 아이슬란드로 이민을 가고 쌍계사 벚꽃이 근사한 지리산 자락으로 이주하는 사람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니까.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