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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형의 미식가들의 향연] 돈과 권력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맛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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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형의 미식가들의 향연] 돈과 권력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맛의 미학

조기형 맛평가사
조기형 맛평가사
미국의 상류층에 진입하려면 필요한 것이 많겠지만, 그중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개인요리사다. 단순 요리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실력이 있는 개인요리사다. 미국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면서 오래 거주했던 선배를 통해서 상류층의 파티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상류사회의 파티문화는 개인요리사의 능력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제 저녁에 개인요리사가 만든 칠레 산골마을의 향토음식에 대하여 그 문화와 맛의 느낌을 파티의 시작이야기로 풀어간다고 한다. 돈과 권력의 향락 끝자락에서 만나는 상류문화의 화제는 이렇듯 맛의 향연으로 귀결되고 있다.

상류사회가 아닌 대부분의 모임에서도 맛을 거론하는 사람이 대부분 이야기를 주도한다. 그래서 맛의 정보에 필요한 최고의 음식정보를 준비하며, 사심 없는 교류가 시작된다. 파티를 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목적성이 있지만, 자신의 양심을 상대에게 보여줌으로써 상호교감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서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의미를 둔다.
파티에서 맛있는 요리와 개인요리사의 역량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자신의 숨어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식탁의 잘 꾸려진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먹을 때 느껴지는 감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진솔한 자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식탁의 소담스런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식습관이 가지는 많은 의미가 함유되어 있어 이를 통해서 삶의 패턴을 사실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상호간의 신뢰를 교류하는 데 음식이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어릴 때 시골생활하면서 이웃집사람과의 친숙함을 물어볼 때 이웃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있다는 것으로 신뢰수준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공개되는 것은 가정의 비밀스런 정보가 노출되는 것으로 상대와 신뢰를 공유할 때 거론된다. 음식을 거론하는 것은 결국 맛을 이야기하기 위한 과정이다. 만남에서 맛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진실한 정보를 내보이며 신뢰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맛은 서로의 교감을 이루는 데 매우 긴밀한 방편으로도 활용된다. 맛을 이야기하면 그 의미를 알아듣는 것으로도 지식과 교양 그리고 생활상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기에 상류사회에서 화젯거리로 부각된다.

맛을 이야기하는 것은 유명화가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유명 오케스트라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과도 다르다. 맛을 표현할 때 자신의 마음을 내세울 수도 있지만, 맛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감동을 끌어내는 자신의 역량이 사용되기에 그 만큼의 능력 또한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맛을 거론하는 것은 고급스런 대화의 소재이기에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신뢰를 받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들이 타당함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유럽에서 미식가들이 사회적 저명인사로 예우 받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음식의 문화와 영양 그리고 역사를 거론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맛을 거론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맛에 관한 정보가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어 찾기도 힘들지만, 모아서 공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맛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 산다. 맛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요리사들이지만, 요리와 맛은 영역이 다르다. 맛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고 미식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맛이 주는 감동을 잘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별개의 영역이다. 그래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미식가를 찾아간다.

맛집을 많이 다니는 것과 미식가는 다르다. 축구시합을 많이 관전한 사람과 축구 선수의 실력은 다르다. 이렇듯 맛을 즐기는 방법이 반영되지 않으면 미식의 세계로 진입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식품계열 대기업 CEO와 식사를 하면서 맛을 거론한 적이 있었는데 극진한 예우를 해주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 분이 미식가였다고 한다. 맛을 거론하는 것으로 빠른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맛을 교육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지도하였는데 극진하게 예우를 받은 적이 다수 있다. 이분들은 맛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신 분들로 미식가였던 것이다.

상류사회에서 즐기는 맛의 세계를 이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의 왕이 드시던 밥상을 전통음식점에 가면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맛이 너무도 범람하듯이 널려있는 이 시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상류층 사람들이다. 우리도 맛을 통해서 가치부여를 하면 된다. 오늘도 맛이 주는 감동을 통해 퍼져 나오는 행복의 잔잔함이 몸과 마음으로 일렁이듯 퍼져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조기형 맛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