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참사는 상대방 배려 없었던 '전형적인 人災'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 마음산책(128회)] 알아서 피해가겠지!

기사입력 : 2017-12-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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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또다시 바다에서 15명이 숨지는 큰 해상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는 지난 3일 덩치가 큰 급유선인 명진15호(366t)가 조그마한 낚싯배인 선창1호(9.77t)를 발견하고도 감속이나 항로 변경을 하지 않아 일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해경은 명진15호 선장 전모(37)씨와 갑판원 김모(46)씨를 조사한 결과 선장 전씨로부터 “(충돌 직전) 낚싯배를 봤다”면서도 “(알아서) 피해 갈 줄 알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해경은 “전씨가 낚시 어선을 발견하고 사고가 날 기미를 파악했음에도 충돌을 막기 위한 감속이나 항로 변경 등을 하지 않아 주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명진15호는 북쪽을 기준으로 216도(남서쪽) 방향으로 12노트의 속력으로 운항 중이었으며, 선창1호는 198도 방향으로 10노트의 속력으로 가고 있었다고 확인했다.

주민들 영흥수도로 중형선박

다니지 못하게 해달라 민원

좁은 곳 폭 370m의 협수로

영흥도와 선재도를 잇는 1.2㎞ 길이의 영흥대교 아래에서 급격히 좁아져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수로가 좁고 수심이 10m 안팎으로 얕아 주로 20t 이하 소형 선박이 지나다니지만 명진15호 같은 300t 이상 중형 선박의 왕래도 잦다. 그래서 주민들은 “영흥수도로 중형 선박이 다니지 못하게 해달라”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이 주변 해역의 지정 항로는 따로 있다. 영흥도 서쪽을 돌아가는 길인데, 해로가 넓고 수심이 깊어 안전이 확보돼 있어 권장하는 길이다. 영흥도 남동쪽과 육지 사이를 지나는 영흥수도는 좁은 곳의 폭이 370m 정도인 ‘협수로(狹水路)’다. 한편으로 서해안 주요 항만을 오가는 최단 경로다. 만약 영흥도 북서쪽 큰 뱃길로 돌아가면 2시간이 더 걸린다. 운송비용은 2배 이상 늘어난다. 급유선이 영흥수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번에 사고가 난 지역은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이 많은 수역이라 더구나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사고를 낸 명진15호는 낚싯배를 발견하고도 “알아서 피해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오히려 속도를 더 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기초적인 안전수칙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었어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인재(人災)’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하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미성숙한 사고와 성숙한 사고를 ‘조작(操作, operation)’이 일어나는지의 유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여기에서 조작은 ‘가역적(可逆的) 정신활동’이다. ‘가역적’ 이란 말은 ‘역과정이 순과정과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신활동’은 실제로 행동하지 않고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어린이는 집에서 유치원까지 가는 길을 물어보면 잘 설명한다. 하지만 가역적인 정신활동인 ‘유치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을 설명하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물론 실제로 유치원에 데리고 가서 집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라고 하면 이번에는 잘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집에서는 잘 설명했던 했던 길, 즉 집에서 유치원에 오는 길을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집에서는 그렇게 잘 알고 있던 길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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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낚싯배 선창1호를 들이받아 13명의 사망자를 낸 급유선 명진15호가 4일 오전 인천 서구 북항 관공선전용부두에 정박해 있다. 사진=뉴시스

대인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도 조작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그 관점에서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자기가 가지고 싶어하는 물건을 고른다. 어린이들은 어머니의 입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가 좋아할 선물을 고를 수가 없다. 다만 자기가 좋은 것은 어머니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어린이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다.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조작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달려오는 차를 보았으니 운전자도 길을 건너는 자기를 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길을 건너야 하니까 운전자가 “알아서” 차를 멈출 것으로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길을 건널 때는 ‘손을 높이 들고 좌우를 살피도록’ 교육시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인이 되었다고 자동적으로 조작적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친숙한 영역에서는 조작이 쉽게 일어나지만 생소한 영역이라든지 고도의 정신적 훈련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미성숙한 사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인들이 즐기는 취미 중에 하나인 바둑이나 장기와 같은 게임에서도 조작이 필요하다. 승패의 결정 요인이 바로 조작이다. 고수(高手)는 조작을 잘 한다. 자신의 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수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숙련된 사고를 할 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한 패착을 두는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대조적으로 하수(下手)는 조작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게임은 상대방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기 일쑤이다. 오직 자신의 수만을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이기는 것 같은 게임에서도 결국 외통수를 두고 패하게 된다.

조작적 사고의 중요성은 일상생활의 다양한 영역에 나타난다. 이번 사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명진15호의 선장은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낚싯배가 자신의 배의 앞에서 느린 속도로 운항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두 배가 그대로 운항하면 부딪힐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배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이기까지 했다. 그 이유가 황당하다. “알아서 피할 줄 알았다” 즉, 상대방 낚싯배가 자기 배를 보고 알아서 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도무지 ‘조작’을 하지 않는 미성숙한 사고의 대표적인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작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암묵적 법칙들이 내면화되어 서로 협응(協應)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평소에도 약속된 원칙들을 잘 준수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면 우왕좌왕하면서 무질서해지는 이유는 서로 약속된 법칙에 의한 조작적 행동을 하는 훈련을 평소에 반복적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작적 사고 일상생활서 빈번

"피할 줄 알았다" 선장 답변 황당

미성숙 사고의 대표적인 증상

우리 사회에는 비록 나이는 먹고, 사회적 지위는 높을 지라도 심리학적으로는 아직도 미성숙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그 지위나 신분에 어울리거나 요구되는 성숙한 사고를 하지 않는다. 즉,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한다.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권위나 권력을 입증하는 방편으로 여기는 미성숙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만약 자신의 일시적인 충동적 행동 때문에 피해자는 한평생 가슴속에 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그 많은 불행한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지적 발달은 교육을 통해서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입장을 고려하고 상호작용하는 생활태도를 교육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배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물리치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교육하고 있다.

명진15호 조타실에 걸린 ‘충돌 예방 원칙’에는 “상대 배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 내가 먼저 피한다” 라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쓰여 있다고 한다. 구호만 있고 실천이 없는 사회.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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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한성열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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