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심판 오심 소동…한국 '불신사회' 적나라하게 반영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29회)] 판단의 공정성

기사입력 : 2017-1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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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매력은 자신의 실력을 총동원해서 승리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선수들, 그리고 경기를 잘 이끌어가는 심판의 노련한 경기 운영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관중이 있다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 빠지거나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면 스포츠의 매력은 거의 바닥으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한다. 물론 팬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경기장은 썰렁해진다. 그러면 선수도 경기할 맛이 안 나고, 팬들을 매료시키던 신기(神技)도 나오지 않는다.

최근 한 프로배구 경기에서 일어난 심판의 오심 논란도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배구의 규칙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관중이 보기에도 명백히 심판이 오심을 한 경기였다. 당연히 피해를 입은 팀의 감독과 선수가 심판에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심판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당당히 인정하고 경기를 진행하기보다는 권위적인 자세로 자신들의 결정을 밀어붙였다.

일반 관중이 봐도 명백한 오심

팬들의 불만 고조된 것은 당연

프로배구 사랑 식을까봐 걱정

배구팬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국배구연맹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오심을 인정하고 긴급히 상벌위원회를 소집하여 해당 경기의 오심과 관련된 심판원들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리고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배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은 이 사건 때문에 겨울스포츠로서 모처럼 팬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는 프로배구에 대한 사랑이 식어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이처럼 고의이건 실수이건 심판의 불공정한 판단은 당해 경기뿐만 아니라 배구라는 종목에 대한 관심조차 떠나가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의 공정성이야말로 모든 경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양 팀의 선수들과 지도자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동안 땀 흘려 연습한 모든 실력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하지만 아무리 온 힘을 쏟는다고 해도 결국 한 팀만이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 팀은 그동안의 피땀을 흘리며 연습한 보람도 없이 패배의 쓴 잔을 맛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패배한 팀이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위해서는 심판의 판정이 공정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믿음이 있어야만 다음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 희망의 바탕 위에서만이 다음 승리를 위해 또다시 각고의 훈련을 이겨낼 수 있는 동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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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이건 실수이건 심판의 불공정한 판단은 당해 경기뿐만 아니라 배구라는 종목에 대한 관심조차 떠나가게 만든다. 심판의 공정성이야말로 모든 경기의 핵심이다. 사진=뉴시스

모든 경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수들이나 팬들의 마음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승패의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다. 우리는 행동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추론한다. 심리학적 용어로는 ‘귀인(歸因)’을 한다. 귀인이 중요한 것은 다음 행동이나 감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귀인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행동이나 사건을 행위자의 내면적 특성, 즉 태도, 성향, 동기 등에 있다고 추론하는 것이다. 이런 귀인을 ‘성향(性向)귀인’ 또는 ‘내부귀인’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는 원인을 환경 속에 있는 요인에 있다고 추론하는 것이다. 이를 ‘상황귀인’ 또는 ‘외부귀인’이라고 부른다.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귀인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이긴 팀의 선수나 응원단은 일반적으로 성향귀인 하는 성향이 있다. 즉 이들은 승리의 원인을 “자신들의 실력이 좋기 때문에” 혹은 “자신들이 열성적으로 응원했기 때문”이라고 내부적인 특성이나 태도에 돌린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 후에는 자부심을 충만히 느낄 수 있다.

모든 경기는 승자와 패자 있어

사법부 판결 무차별 인신 공격

양심적 판단보다 여론 눈치 봐

대조적으로 실패한 선수나 응원단은 ‘상황(狀況)귀인’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패배의 원인을 “심판이 편파적이었다”라는지 “상대 선수가 지나치게 반칙을 했다”는 등의 외부귀인을 한다. 그래야만 패배에 의해 낮아진 ‘자존심’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심판의 판정이 분명히 오심인 경우에는 주관적 해석뿐만 아니라 객관적 사실까지 더해진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심판 판정에 대한 주관적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한다. 그러면 다음 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패배에 대해 모두 상황귀인을 하게 된다. 그 결과는 당연히 열심히 노력하고 훈련할 동기를 잃게 된다. 열심히 해보았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팀에서 상황귀인할 수 있는 요소를 가능하면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한 팀에서 다음 경기에 이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할 때 명승부가 나온다. 그리고 지켜보는 관중들은 그런 경기에 열광하게 되고 다음에 또 경기장을 찾아 환호할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심판의 오심(誤審) 소동은 현재 한국 사회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심각한 ‘불신사회(不信社會)’라고 할 수 있다. 삼권분립(三權分立)에 기초한 사회가 민주사회라는 것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워온 것이다.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가 서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동시에 상대방도 그에 합당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 신뢰 위에서 상호 견제하고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해법을 민주적 방법으로 찾아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이다.

하지만 최근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입법부 특히 여당의 도에 넘치는 비난은 개탄스러운 정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큰 우려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자, 그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해 집권당의 주류 의원들이 막장 수준으로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 이런 공격은 사법독립에 큰 장애가 된다. 이런 무책임한 공격이 계속 되면 판사들은 ‘범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기보다는 여론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로 돌아간다. 국민들이 사법부의 판단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믿는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는 살면서 불가피하게 타인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판단이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예상과는 빗나가는 판단에 접할 때도 있다. 그 경우에도 마음으로 승복하고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판단이 최소한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어느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회에서 종종 회자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바로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공정한 판정을 내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동시에 몸가짐도 철저히 조심해야 한다. 한 배구팀의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잘못된 판정이 나면 선수와 구단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이유는 코트 위에서 성과를 보이기 위해서다. 경기 외적인 요소로 실점하면 흐름이 끊긴다. 이는 치명적이다. 단순히 한 경기를 넘어 그 뒤까지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많은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불공정한 판단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자신이 정당한 대가(代價)를 받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고된 훈련을 이길 수 있다. 만약 부당한 이유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주관적으로 느끼면 좌절하고 불만이 쌓인다. 그리고 이 좌절과 불만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한다. 이는 사회를 위해서는 ‘치명적’이다. 그리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좌절한 에너지를 미래를 위해 긍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바꿀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사회에 밝은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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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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