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이동 M극장에서 ‘색다름이 공존하는 자유로운 무대’라는 슬로건을 내건 김운미 쿰댄스컴퍼니(예출총감독 김운미 한양대 무용과 교수, 대표 이영림)의 제19회 ‘묵간’ 둘째 날, 자신들의 이야기 상자를 조심스럽게 연 30대를 살아가는 여성안무가들의 작품 중 안지형 안무의 『물의 기억』은 시대적 이질감을 물처럼 바람처럼 어울리면서 소통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다/ 누구라도 채울 수 있도록 1도를 남겨둔 사람들/ 거친 세상에서 물을 닮아 왔다/ 현대라는 황량한 사막에 물길을 내어/ 마음을 모아 서정을 끓이고 있다/ 조금만 더/ 바람과 빛이 없어도 언 땅을 녹여/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도록 기원한다/ 서로가 작은 산이 되어/ 그 사이에 물의 유희를 두고/ 풍광을 만들어내는 ‘물의 기억’
『물의 기억』은 안지형(한국무용가)과 김학남(스트릿 댄서)이 하나의 기억으로 만나면서 시작된다. ‘물의 감성을 품고 싶은 여자’와 ‘물처럼 움직이고 싶은 남자’는 서로 다른 삶과 환경에서 장르가 다른 춤 인생을 살아왔다. 두 사람은 물의 유동처럼 수많은 시간을 흐르고 흘러 만나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만남의 의미를 통해 서로의 시공간을 공유한다.
삶 속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남녀관계, 인간관계들도 다름-만남-의미로 이어져가면서 공유된 시간 속에서 또 하나의 삶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닐까. 예측할 수 없었던 의미이기에 더 순수하게 공유되었던 기억들이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전달되길 바란다.
‘춤은 물을 닮았다./ 물은 인간을 닮았다. / 너와 나../ 삶의 시간을 통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몸이/ 물처럼 흐르고 흘러 만나/ 하나의 기억이 된다.’ 안무가는 살아가면서 만난 모든 관계를 다름-만남-의미의 연속으로 규정한다. 공유시간 속에서 느리게 섞이고 하나 되는 삶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면서 순수하게 공유했던 기억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물의 기억』은 한국춤(호흡과 감성)과 스트릿댄스(감각적, 섬세한 동작)를 ‘춤’이라는 큰 줄기로 보고 오랜 시간 활동해오며 자신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춤춰온 두 사람이 춤을 통해 하나의 무대 속에서 기억을 공유한다. 두 춤꾼의 공통된 춤 철학은 「‘물’처럼 살고 싶다. ‘물’처럼 움직이고 싶다.」는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는 만남으로 춤의 흐름과 호흡을 하나로 연결한다.
춤의 묘미는 즉흥성과 현장성에 있다. 안무가는 이질적인 두 춤이 하나의 커다란 춤 틀 속에서 인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며,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관객들, 두 사람의 춤꾼, 라이브 연주자(백하형기)의 행위가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물의 기억』은 다름-만남-의미의 ‘끝’이 아니라 영상처럼 지속될 기억의 이야기임을 밝히며 종료된다.
안지형 안무의 『물의 기억』은 안무가의 고운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음악의 편제를 가져온 구성 속의 남녀 이인무는 자신들의 기교를 함축적으로 보여줌과 아울러 강약, 완급, 동서양의 특징들을 조화롭게 엮어가면서, 사유의 춤을 보여주었다. 아는 만큼 더 재미있었을 춤은 완벽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진정성을 견지한 수작(秀作)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