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파파라치] 아이유와 기예르모 델 토로를 위하여

기사입력 : 2018-03-14 10:35 (최종수정 2018-03-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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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생각의돌파력저자)
주말 요즘 화제작이라는 세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원작의 모티브를 잘 살린 따뜻함이건, 다큐형식의 팽팽한 신경전이건, 전혀 다른 화법의 연애론이건 본전 생각 안 나는 작품들이었다. 이 중 굳이 한편을 추천하라면 '셰이프 오브 워터'다. 문화 컨텐츠의 운명은 보편성과 특별성이 교차하는 어디쯤에 있다. 한쪽은 대중에 편승해 천만관객을 모으는 히트작이 되거나, 다른 한쪽은 낯설고 독특한 이야기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다. 대중에 편승한 보편성의 영역은 지루할 수 있고, 낯설고 새로운 독특성의 영역은 자칫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꽉 들어찬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기 위해선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특별하게 담아내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일본 원작을 옮긴 한국영화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시험과 연애와 취업에 시달리는 세 젊은이가 사계절을 함께 보내며 겪는 이야기다. 영화에선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광과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의 향연이 이어졌다. 주인공과 그의 엄마가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모습은 기차 창밖으로 펼쳐진 시골 풍경을 보는 것처럼 편안했다. 특히 젊은 층의 무력감, 세대 간의 소통 단절은 우리 세대가 다 함께 겪고 있는 문제라서 가족 영화로 훌륭했다. 그러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라 새로운 장르를 열어가는 용기나 모험심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더 포스트'는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감춰온 국가 기밀을 폭로해 권위지로 우뚝 선 워싱턴 포스트의 이야기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없어진 물건 때문에 다 함께 무릎을 꿇고 벌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범인은 체육 시간에 몰래 교실에 남아있던 내 친구였는데 나는 결국 못 본 척하고 말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진실의 문제에 마주친다. 그것을 다루는 것이 본업인 언론인이야 말해 무엇하랴. 미투 운동의 광풍도 강압적 권력에 맞서는 미약한 개인의 용기라서 이 영화에 대한 공감이 클 것 같다. 주연 배우들의 대사가 스피디한 연출로 버무려져 시종 긴박하고 팽팽했는데, 이와 유사한 주제를 유사한 방식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아 ‘새로운 최초’가 주는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흔한 사랑과 소통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불편할 만큼 기발했고 오싹할 만큼 독특했다. 여자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주인공이 실험실 수조에 갇힌 흉물스러운 괴생명체인 것이다. 이 둘은 심지어 육체적인 사랑도 나눈다. 게다가 ‘나도 그 사람처럼 소릴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라고 되물으며 목숨을 걸고 그 괴물을 탈출시키는 벙어리 여주인공은 괴물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통해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고 자신의 운명까지 구원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물속에서의 포옹씬은 인간 세계가 닿지 못할 신화적 색깔로 사랑에 대한 상상력의 극대치를 보여주었다.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독특한 형식미로 완전히 다른 감동을 던져준 것이다.

인문학자 최진석 교수는 선진국의 기준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오랫동안 연마한 특유의 판타지로 환상적인 사랑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물론 '토니 에드만'의 포옹씬이나 '라라랜드'의 댄스씬이 연상되는 장면도 언뜻 보이긴 했지만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이 어디 있으랴. 모든 것은 반사된 빛이라 했으니. 한번 보시면 알 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했다고는 하지만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남겨진 사랑이고 양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스쳐 가는 사랑이고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돌아오지 않을 사랑이다. 모두 다 같은 사랑인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사랑 영화의 연대기에 당당히 올라 있는 것이다. 아이유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평가를 들었는가? K-POP의 진부함을 깨고 독창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녀만의 감성으로 정서적인 위안까지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시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방향성있는 음악 25곡’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출석부의 한 줄이 아니다. 당신만의 ‘리틀 포레스트’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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