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인도판 문익점으로 불리는 무슬림 바바 부단이 1600년 메카로 순례를 떠나 돌아오는 길에 커피씨앗인 생두를 몰래 숨겨 귀국해 이를 발아시켜 커피를 정착시켰다고 한다. 이 일을 알게 된 동인도 회사의 유대인들이 인도에 스파이를 보내 커피 원두와 묘목을 밀반출해 네덜란드에서 커피 재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폴레옹과 커피의 세계화를 연결시키는 데는 다소 복잡한 사연이 있다. 1799년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나폴레옹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를 자신의 세력하에 두었다. 1806년 당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영국을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영국의 '해상 봉쇄령'에 맞불로 '대륙 봉쇄령'을 공표한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식민지에서 수입되던 설탕, 커피, 콩이 부족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사용이 가능한 재료로 설탕과 커피를 만드는 연구를 장려했다. 설탕은 사탕무에서 만드는 기술의 실용화에 성공했지만 커피와 콩의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유럽 전역이 심각한 커피 부족에 시달렸다.
게다가 '대륙 봉쇄령'은 영국을 약화시키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해외와의 무역을 금지한 유럽 국가와 프랑스 국민의 분노를 사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이라는 이 세기의 실책이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커피의 보급을 촉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중남미 국가의 주요 재배 작물은 설탕이었다.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에 의해 유럽에 설탕을 수출 할 수 없게 된 데다가 유럽에서 사탕무로 설탕을 만드는 기술이 실용화 되면서 설탕 가격이 폭락했다. 중남미 국가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중남미 국가들이 주목한 것이 커피 재배였다. 광대한 고원 지대를 가진 중남미 국가들은 커피 재배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이 전 세계에 커피를 공급하는 '커피 대국'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