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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호암리 기호암각화와 고대 신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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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호암리 기호암각화와 고대 신시문자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14)]

고대 문명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문자의 사용이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고대 사회에서 일찍이 문자가 있었음이 확인됐다(BCE 2000-1500년경의 도화문자). 문자가 창제되기 전에는 주로 결승문자(노끈문자)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남미 인디언이나 잉카제국에서도 통용되었다.

환웅 임금이 신시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기틀을 다지면서 필요한 것을 적어 둘 수 있는 글이 없어 불편을 겪게 되었다. 임금은 이 때문에 방도를 찾느라 늘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혁덕이라는 신하를 불러 글자를 만드는 일을 맡겼다. 명을 받은 혁덕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은 쉽게 했으나, 막상 무엇부터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한참 동안 짐승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 사람 인기척에 놀란 암사슴이 수풀 속에서 일어나 도망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황급히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사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도망간 사슴을 찾아 산과들을 헤매다가 평평한 모래벌판에 이르렀다.

이때 모래벌판에 사슴이 지나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사슴을 뒤쫓는 일도 까맣게 잊은 채 사슴 발자국만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얼마 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무릎을 내리쳤다. 바로 ‘생각을 접어두는 방법’을 사슴 발자국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정신 없이 집으로 달려온 그는 ‘산은 어떻게 나타내며 나무는 어떻게 표시할까’ 머리 속은 온통 그런 궁리로 꽉 차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도 잊은 채 여러 가지 물건의 모양을 떠올리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드디어 혁덕은 글자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실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자가 탄생된 것이다. 이 글자는 사슴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고 해서 ‘녹도문’이라 하며, 또한 신시 혁덕이 만들었다고 해서 ‘신시문자’라고도 한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