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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36살 '너구리'의 동반자, 금일 다시마 고향서 찾았다…바다와의 '상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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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36살 '너구리'의 동반자, 금일 다시마 고향서 찾았다…바다와의 '상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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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농심 제공
[글로벌이코노믹 임소현 기자]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에서 남쪽으로 48km 가량 떨어진 섬, 빙그레 웃을 완(莞)자와 섬 도(島)자를 쓰는 완도에서도 다시 38km 가량을 달려야 했다. 드디어 도착한 당목항에서 30분마다 한 번씩 뜨는 배를 타고 20여분 들어가야 있는 금일도. 고요한 섬 마을에는 6월이 되면 오전마다 어김없이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곳을 찾은 지난 8일 오전에도 어김없이 호루라기 소리가 금일도를 감쌌다. 파란 셔츠를 입고 숫자가 써진 모자를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검은 수첩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겹겹이 쌓인 다시마 더미 한복판. 멀리서 보면 마치 비닐 자재를 쌓아놓은 모양새지만, 그들은 다시마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육지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이 곳 금일도에서는 연례행사로 돌아오는 정겨운 장면. 완도금일수협 다시마 위판장의 모습이었다. 전국 다시마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금일도는 인근 지역 다시마 생산지 사이에서 단연 최상급 다시마 생산지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어긋나있는 주변 섬들이 파도와 태풍을 막아준다. 다시마의 생육특성과 꼭 맞아떨어지는 최적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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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농심 제공

금일도 다시마 경매는 주로 6월에 진행된다. 늦어도 7월 초를 넘기지 못한다. 비를 맞으면 품질이 저하되는 ‘예민한’ 다시마인지라, 장마 전에 다시마 건조와 경매가 모두 마무리돼야 한다. 내년 다시마 경매 시기가 올 때까지 사용할 다시마를 사들여야 하는 수매자들 사이에서 비장한 분위기마저 감돈 이유다.

올해 들어 10번째로 열린 경매날인 이날 나온 다시마는 140톤 가량으로, 올해 최고량이다. 이날 나온 다시마는 kg당 최저 5000원부터 최고 1만원에 낙찰됐다. 연중으로 28~30회 진행되는 경매장에는 최대 200톤의 다시마가 나오기도 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다시마는 여러 곳으로 팔려가 우리 식탁에 오른다. 금일 다시마를 먹어본 적이 있을까 싶지만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먹어본 적 있을 것이다. 36년간 54억개가 팔린 ‘농심 너구리’에는 언제나 금일 다시마가 들어간다.

이날도 역시 경매에 나선 ‘너구리 사장님’ 신상석 농심 협력업체 대표는 금일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신 대표는 국내 최초 우동라면 너구리가 시장에 나온 1982년부터 다시마를 전담마크했다. 신 대표는 36년 동안 금일도에서 사들인 다시마를 제조해 농심에 납품했다. 36년동안 금일도에서 다시마를 사들이는 사람은 신 대표가 유일한 만큼 금일도에서 신 대표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다.

신 대표는 “한 때는 일본 수출도 했었지만, 모두 정리하고 너구리에만 온전히 납품하고 있다”며 “36년 동안 라면 브랜드가 살아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협력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고 전했다.

신 대표가 연 평균 금일도에서 수매해 농심에 납품하는 물량은 400톤 정도로, 금일도에서 생산되는 건다시마 생산량의 15%에 달한다. 신 대표가 사들인 다시마는 김해 공장으로 이동해 제조 과정에 돌입한다. 검사와 세척, 건조, 절단 등을 모두 거치고 나면 최상급 다시마의 줄기 부분으로 잘 절단된 다시마가 너구리에 들어가 우리 식탁에 오른다.

신상석 농심 협력업체 대표가 지난 8일 금일도 다시마 건조장에서 다시마 건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신상석 농심 협력업체 대표가 지난 8일 금일도 다시마 건조장에서 다시마 건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농심이 지속적으로 다시마를 수매하는, 기업납품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금일도 전반의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금일도에 살고 있는 1800여가구 중 400~500여가구가 다시마 생산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김승의 완도금일수협 경제상무에 따르면 금일도는 최근 해조류 소비가 안돼 IMF 이상으로 어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미역의 경우, 소비 자체가 줄어 재고가 많아지고 있지만 가격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상황이다. 김 상무는 “하지만 금일도 다시마는 높은 부가가치로 (금일도) 어민들의 효자상품으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농심 너구리 덕분에 다시마가 국내에서 상당히 부각됐다”면서 “소비가 이어지면서 더불어 금일도도 다시마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로 유명한 농심 너구리는 다시마를 고유 특성, 즉 아이덴티티로 내세우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다시마를 먹어도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고 다시마가 두 개 들어있는 경우 ‘로또’를 사야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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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농심 제공


신 대표는 “실질적으로 다시마가 어민 소득에도 기여를 하지만 국민 건강에도 기여를 하기 때문에 다시마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전반적인 산업에 대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라면 시장에 한 획을 그은 장수 브랜드 너구리. 나른한 휴일, 쫄깃하고 오동통통한 ‘너구리’를 몰고 싶은 소비자들의 식탁만을 지켜온 줄 알았다. 4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너구리는 우리나라 남쪽 끝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임소현 기자 ssosso6675@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