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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장현수 안무의 '목멱산 59'…장현수표 창작무용 만개 알리는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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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장현수 안무의 '목멱산 59'…장현수표 창작무용 만개 알리는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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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수 안무의 '목멱산 59'
최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장현수(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들숨무용단 비상임 안무가) 안무의 한국창작무용 『목멱산 59』(각본・음악연출 임현택 들숨무용단 대표)의 2018년 버전이 공연됐다. 느린 흑백 영상 속에 신무용의 전성기를 껴안았던 서울의 남산 장충동 59번지는 한국무용의 성장과 향방을 견인하는 국립무용단의 주소이다. 남산과 비발디의 사계의 만남을 확장한 안무 사이에 근현대사가 스쳐간다.

‘창작산실-올해의 레퍼토리 사업’에 선정된 『목멱산 59』는 ‘여인의 일생’에 걸친 한의 정서를 채에 걸러 낸 듯한 섬세한 안무력, 양악과 국악의 현장감이 선사하는 조화로운 배합의 음악, 파스텔 톤의 조명 등이 절정의 춤사위와 디딤에 실려 ‘춤의 미학’을 성취해낸 작품이었다. 비발디의 거대한 감성을 두고 안무와 현장 음악이 어울린 경우는 모리스 베자르의 ‘합창’을 떠올린다. 모험적 시도의 한편에 우뚝 솟은 장현수의 안무는 한국 정서의 동화성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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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수 안무의 '목멱산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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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세트는 동화적 공간을 인지하도록 남산에서 조망할 수 있는 초가와 너른 마당에 딸린 정원을 미장센의 대상으로 삼는다. 안방 문을 열고 닫으면서 ‘혼돈의 시대’가 흘러가고 사건과 사연이 살구처럼 열린다. 마당은 여름날의 담화를 낳으며 멍석을 껴안기도 하고, 가을엔 노란 달덩이가 되기도 한다. 무대와 창작무용의 어울림은 사실을 환상화 시킨다. 시대를 관통하는 장치로 흘러간 대중가요와 서양음악, 가곡 등을 배경으로 현대와 전통이 부드럽게 조우한다.

우리춤의 대안을 제시한 『목멱산 59』는 신문명의 유입과 함께, 분주하게 음악이 편집・삽입되어 춤에 감정을 이입시키면서 이미지를 구축한다. 계절과 시대에 얽힌 의상 또한 장현수의 무용극의 흐름을 따라간다. 순회공연 초청작으로 꼽힐 『목멱산 59』는 프롤로그, 에필로그가 있는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정원에서의 춤의 언어(봄), 2장: 마음을 이야기하는 정원(여름), 3장: 속삭임이 있는 노래의 정원(가을), 4장: 무대위 갈채속 행복의 정원(겨울)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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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저고리에 꽃무늬 가득한 신식 깡통치마를 입은 소녀가 이른 봄을 솔로로 풀어낸다. 존 바에즈(Joan Baez)의 ‘솔밭사이로 강물은 흐르고’가 청순하고 아름다운 처녀의 이미지를 가색(加色)한다. 남성 독무가 느낌을 이어가며, 세 저고리(노랑, 연두, 분홍) 소녀의 춤에 라이브 현악 사중주가 달라붙고, 대중가요의 클래식화가 이루어진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로 흐르는 유호 작사・작곡의 ‘서울야곡’이 중심가 서울 분위기를 훑어낸다.

1장: 서민들의 삶의 안식처인 남산골에 봄빛이 터지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도 봄의 서정이 스며든다. 천진난만했던 소녀 시절, 버들강아지 손에든 소녀들이 느리게 아름답게 미래를 춤춘다. 나무의자 두 개가 놓인 플로어 곁으로 남학생이 나타나면서 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린다. 조명은 서서히 밝아지며, 바닥의 황토 빛은 달을 닮아있다. 피리가 감정선을 따라간다. 이때 객석으로부터 머리에 바구니를 인 어머니(장현수)가 등장한다.
분홍치마에 무명저고리를 입은 어머니의 심정을 담은 ‘타향살이’가 가야금 연주에 실린다. 국악관현악단 연주가 가세되면 장현수의 느긋하고 천연덕스런 연기는 빛을 발한다. 춤은 듀엣으로 확장되고, ‘개나리처녀’가 들어오고, 어머니의 잔 동작, 잔걸음에 해금이 가세한다. 듀엣이 퇴장하면 의상이 바뀌고, 김동환의 시에 김동현이 곡을 부친 ‘산넘어 남촌에는’이 박찬영의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소프라노 김경림이 가창한다. 가사의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책보를 멘 남학생 듀엣의 갈등과 우정의 춤을 만나게 된다. 소녀들도 신구식 취향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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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뜨거운 시대적 열정을 타고, 일렁거리는 마음들을 비발디의 여름이 파고 든다. 생의 나침반이 흔들리던 시절, 낯선 양장 차림의 모던 걸이 등장한다. 모던 보이들과 모던 걸들의 춤이 벌어진다. 멍석과 평상으로 상징되는 여름 밤, 어머니는 대금이 위로하는 가운데, 밤의 서정을 곁에 두고 이런 저런 고민을 껴안는다. 장현수의 심리연기가 발휘된다. 백난아의 '찔레꽃' 노래에 피리・장고・가야금이 화답하고, 한복남 작곡의 ‘앵두나무 처녀’가 불안으로 다가온다.

무대는 투사 영상, 무대세트(초가집), 플로어(셔레이드 효과), 관현악 4중주, 피아노, 국악관현악단 영역으로 분할된다. 순차적 구성의 내러티브는 계절이 바뀌면서 소녀가 성장해 가는 과정 속에 시간의 나이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도록 강제한다. 회한의 정서는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전통적 미덕으로 삼았던 어머니의 현재적 삶을 지켜보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음이다. 전통과 현대가 서로 보다듬으로써 작품의 존재적 가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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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대지의 뜻을 담은 결실에는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게 된다. 장현수는 고도의 절제 속에 움직임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감지해내는 절대무감(絶對舞感)과 넘치는 연기력으로 생동감을 일으켰다가 가라앉히는 기교를 소지하고 있다.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으로 잠 못 이루는 어미의 밤, 결혼을 앞둔 모녀의 갈등 위로 오동잎이 떨어지는 가을밤의 한복남 작곡, 가수 황정자의 히트곡 ‘오동추야(梧桐秋夜)’는 위안의 도구가 된다.

핑크저고리 처녀의 독무에 이어 청년이 등장하여 이인무가 이루어진다. 백설희의 ‘물새우는 강언덕’이 클래식화 되고, 둘이서 부르는 싶은 사랑노래는 결혼식의 전조였다.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의 독무에서 5인의 신부의 춤으로 획장 된다. 의자가 놓인 가운데 부케가 등장하고, 한 쌍의 부부가 탄생된다. 피아노와 가곡이 어우러져 결혼식 축가가 불려진다. 트라우마가 있는 듯 보이는 신랑, 신부의 독무에 이어 환상적 네 쌍의 춤이 절정을 이룬다. 국악관현악단의 ‘타향살이’가 서민들의 삶이 여전히 팍팍함을 알린다.

4장: 장현수의 코리안 탄쯔 테아터의 결말은 여전히 희망이다. 어미의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오래 전, 다듬이질하던 어미의 모습, 초가집 방 문을 열고 나오면서 고이 키운 딸을 전통결혼식으로 출가시켰다. 세월 따라 어미는 초가에서 임종을 맞는다. 봉화모양의 첨단 복식을 한 다섯 여인의 클래식한 제의(祭儀), 아쟁과 피리가 슬픔에 가세하고, 하늘에는 눈이 떨어진다. 유 호 개사 손목인이 작곡한 ‘안해의 노래’가 무대에 퍼진다. 어미는 눈을 쓸다가 서 있다. 이어 이시우 작곡의 ‘눈물젖은 두만강’의 아쟁과 해금의 선율이 느리게 어미의 마음을 파고 든다. 딸 부부는 그림처럼 잠들고 『목멱산 59』의 사연은 종료되지만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에필로그: 장고를 멘 장현수는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추도록 유도한다. 장현수의 춤은 대동과 열림의 춤으로 바뀐다. 선율은 ‘앵두나무 처녀’에서 ‘오동추야’로 이어진다. 춤은 화평과 화합의 기원으로 마무리된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에서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에 이르는 공연은 국립무용단이 레퍼토리화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품이었다. 장현수의 전통춤을 기반으로 한 오늘을 감내하는 창작무용은 각 부문에 열정을 실은 예인들과 여덟 명의 재기 있는 춤 연기자들의 춤과 함께 탁월한 안무력을 보여 주었다.

○ 장현수 약력

2017 대한민국 무용대상 목멱산59』(한국무용협회)

2010 제 19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체육부)

2009 한국춤 비평가상 연기상수상(한국춤비평가협회)

주요안무작ㅣ『상상력』, 『둥글게둥글게』, 『장현수의 춤 - 여행』, 『청안』,

『목멱산59』, 『검은꽃』, 『사막의붉은달』, 『피노키오에게』,

『암향』, 『아야의향』, 『바람꽃』, 『팜므파탈』,

『내혈관속을 타고 흐르는‘수정흥무’』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