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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베토벤 창작의 광적 몰입에 관한 춤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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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베토벤 창작의 광적 몰입에 관한 춤적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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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
최근 M극장에서 신종철 JCDance 주관, 신종철(무용학 박사) 안무의 휴먼프로젝트3 현대무용'NO.9'이 공연되었다. ‘피지컬 씨어터’라고 명명된 공연은 청력을 상실하고 고뇌하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과 신분상승을 위해 야망을 키우는 남자 미하일 사이의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귀머거리가 되어 가면서도 교향곡 9번 창작에 몰두하던 베토벤은 영원한 창작의 모티브가 된다.

‘모차르트와 샬리에르’와 오버랩 되는 삶, 아기레 감독의 <댄싱 베토벤>이 떠오르는 춤, 음악・연극・춤이 주도적 세 축을 형성한다. 상실과 절망이 먹구름처럼 예술가들의 언저리에 달라붙고, 19세기 초반의 시대적 분위기가 베토벤 음악을 통해 스쳐 지나간다. 피아니스트 허인슬이 비창 소나타 8번 1악장을 강렬하게 변주하면서 베토벤의 비극적 삶을 암시한다.
흰 와이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은 네 명의 여성 무용수들은 흑백의 건반을 상징하며, 베토벤의 악상을 따라가며 춤을 춘다. 건반이 된 춤이 스쳐가고, 해설자는 베토벤의 시대로 가는 시간여행에 관한 독백을 쏟아낸다. 건반 여성들은 베토벤의 작곡 진전에 따라 손 움직임과 발동작이 분주해 진다. 지휘봉을 든 생각에 잠긴 베토벤, 해설자, 무용수의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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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

안무가는 장면 사이에 연출되는 상황을 추상화 한다. 드라마가 있는 장면들은 장면이 요구하는 상황을 최대한 이미지화 하여 춤으로 변환시킨다. 연출은 조명을 이용하여 장소의 구분, 상황의 이미지화, 등장인물들의 심리연기를 부각시킨다. 안무가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인간행동에서 드러나는 실수를 들어다 보고, 자신의 삶과 비교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조명은 대도구와 장치가 없는 작품에 장소와 상황을 표현할 때 인물의 심리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안무가는 장면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만큼 장치의 활용보다는 조명 효과의 극대화를 꾀한다. 안무가는 시대적 부조리, 절망의 늪에 빠진 예술가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동일시시킨다. 인간 존엄에 걸린 실험적 창작무용은 절규에 가까운 외침의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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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

‘No. 9’은 청력 악화에 따른 악성의 내면세계와 고독의 높낮이를 베토벤 음악들로 풀어낸다. 세상을 무시했던 괴팍한 베토벤의 음악세계에 이견을 노출했던 미하일은 차츰 베토벤의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위기감과 상실감을 극복한다. ‘No. 9’은 위기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 희망을 선사한 작품이다.

1824년 초, 빈의 겨울. 미친 듯 작곡에 매진하는 베토벤. 이미 청력을 잃고, 건강은 쇠약해진 상태지만 삶의 마지막 환희를 느끼며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완성해간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완성되어간다는 소식에 귀족들은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을 빈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5월 7일에 연주회가 계획되고, 그 소식은 빈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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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

베토벤의 고뇌를 상징하는 무대 바닥의 조명, 피아노 소나타 17번 D단조 Op.31-2 '템페스트' 3악장, ‘운명’ 교향곡 1악장이 흐르고 무용수들은 여성 4안무와 베토벤과 미하일 2인의 6인의 군무가 형성된다. 후원자 프란츠 부인과 베토벤의 듀엣, 로망스 2번 F장조가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선지 조명 위의 여성들은 베토벤의 악보판이 되고 흥미를 유발한다. 미하일의 대사에 이어 눈 가린 여인과의 춤은 소나타 14번을 타고 블루 속에 이루어진다.

교향곡 9번이 나오기까지의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프란츠 부인은 로시니의 오페라의 대타 지휘자 미하일에게 베토벤 교향곡 지휘를 부탁한다. 베토벤을 방문한 미하일은 마지막 부분에 합창이 들어가 있는 교향곡의 악보를 보고, 베토벤에게 반대를 표시한다. 베토벤은 미하일의 말을 무시했지만 자신이 교향곡에 합창을 넣은 것이 잘못된 것이지 아닌지 불안해한다.

연습이 시작되고, 미하일이 열정적으로 지휘하며 베토벤의 곡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자, 못마땅한 눈으로 지켜보던 베토벤이 직접 지휘에 나선다. 베토벤의 속도에 연주자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불협화음이 인다. 그날 밤 부터 베토벤의 악몽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통 속에, 꿈 속 자신의 허상을 마주하지만 그 허상은 곧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가 된다. 두 명의 지휘자와 함께 여성 4인의 춤이 교향곡 9번의 연습을 대신한다.

미하일, 베토벤의 악보를 보고 있지만 그의 음악을 이해하기 힘들다. 미하일은 베토벤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해보기 시작한다.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합창 2악장, 그 속에 담긴 좌절과 아픔을 깨닫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힘찬 움직임을 느낀다. 이어지는 자작 주제에 의한 32개의 변주곡 C단조, 교향곡 7번 A장조 Op.92 2악장, 피아노 소나타 제8번 C단조 op.13 ‘비창’ 속에 베토벤은 춤추고, 동화 같은 그림자극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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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

어느덧 미하일은 베토벤의 음악적 영감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 사이에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F단조, Op.57 1악장, 교향곡 6번 ‘전원’ F장조 Op.68, '터키 행진곡' 작품번호 113, 월광 소나타 아다지오, '에그몬트' 서곡이 스쳐지나 갔다. 며칠 후, 깨달음을 얻은 미하일은 문을 박차고 나와 베토벤에게로 가지만 베토벤은 자유와 혁명이라는 합창의 가사들 때문에 프란츠 부인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된다.

미하일은 여러 사람들과 연주회를 열수 있도록 프란츠 부인을 설득한다. 결국 프란츠 부인은 여론에 밀려 연주회를 열어주고 미하일과 베토벤은 ‘환희의 송가’에 이르는 화해의 하모니를 연주한다. 환희의 송가와 함께 빛으로 쏟아지는 영상이 인상적이다. 여성무용수 3명, 프란츠 부인, 미하엘, 베토벤, 피아노연주자가 이뤄낸 ‘No. 9’은 기대 이상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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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철 안무‧배혜령 연출의 휴먼프로젝트3 'NO. 9'

신종철,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고정관념에서의 탈피, 부동의 모든 나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는 안무가다. 낮은 곳으로부터 어울림의 미학, 소통의 언어를 찾아 몸으로 부딪히며 공동체를 일구어가는 모습은 여전히 해맑은 청년 무용가의 모습이다. 그의 안무작 ‘NO. 9’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춤 예술가가 화두를 깨고자 하는 작품이었다.

출연: 조원종, 조영환, 오승연, 심도희, 강혜민, 김건희, 신종철


장석용 글로벌 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